세상을 깨고 진리의 빚이 창조된다!
세상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니라
진리에 죽은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예수가 진리 안에서, 십자가에서 뭇 세상 대중 앞에서 돌아가신 것과 세례요한이 쟁반 위에 잘린 목을 뭇 사람들 앞에서 조롱 당하며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렇듯 진리에 죽는 행위야말로 세상 관점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비참하고 허무해서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과거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내린
한결 같이 내린 결론도 “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만큼 핍박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입니다.
진리의 길은 세상 관점에서는 힘든 십자가 길일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상 육의 껍질을 벗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영광의 길이기에 그 숙명적 과정을 되돌릴 세상적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상의 화려한 꽃이 떨어져야 진리라는 열매가 맺듯이 인간의 육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든가, 인간의 목이 쟁반에 담길 때에만 비로소 진리의 영이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는 묵시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우리 안에서 진리의 영이
발현되는 것이고, 이는 보이는 육이 실상이 아니라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리의 영을 만나게 된다는 진실입니다.
허상인 육의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실상인 거듭난 영의 인생을 나타나게 하기 위해 허상인 살아 있는 육의 예수와 세례요한을 십자가에, 쟁반 위에 죽게한 것입니다.
“나는 망해야겠고 그는 흥해야할 것이라.”
이것이 어찌 세례요한만의 고백이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죽을 예수의 진짜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수는 후패해야겠고, 그가 후패함으로해서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 예수가 흥해야한다”는 겁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가 드린 마지막 기도에서, “고난의 잔을 비켜가게 하기를 원하지만,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예수의 고백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예수가 죽어서 그리스도 예수가 산다면
기꺼이 나를 죽이라는 예수의 고백입니다.
한 점 죄 없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 진리의 영인 그리스도 예수로 부활될 때, 비로소 공허하고 어두운 세상의 흑암에 생명 진리의 하늘의 빛이 재 창조되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고 하늘 영광, 곧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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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외침’을 듣자)
욕심도 없이 한 벌 옷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 인생이 세 문장으로 표현된 한 사람이 있어 소개합니다.‘약대 털옷을 입고,허리엔 가죽띠를 메고,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산 사람’,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고독과 침묵 속에서 외로움보다는 오히려 훈훈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때로 고독과 침묵속에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침묵의 은총’이란 글을 보면 ‘침묵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말을 찾아내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30년 세월의 침묵은 말하지 않기 위한 침묵이 아니라 말하기 위한 침묵이었습니다. 꼭 해야 할 한마디, 즉 “회개하라.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한마디를 외치기 위한 침묵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은 아무런 욕심이 없었습니다.
욕심을 버리면 세상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욕심을 버리면 그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세례 요한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대에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
인과 서기관들 앞에서 “회개하라.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향해 진리를 외면하고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저들에게 참 의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성공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저들에게 진리를 보여줄 수 있으며,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을 높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만 보이게 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비참한 인생을 마친 것 같지만 그는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저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이스라엘 자손을 주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서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품에 돌아오게 하고,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이 귀한 사명을 감당했기 때문에 그는 죽어도 여한이 없었습니다. 사명에 충실합시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뭇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거스르는 자, 거역한 자들이 주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며 영광 가운데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능력과 엘리야의 심령을 가지고 산 것처럼 우리도 세례요한의 심령과 세례 요한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갑시다.
이 마지막 세대의 우리는 저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실하고자 하는 마음들을 일깨워 하나님께로 이끌어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을 향해 희망을 찾아주는 교회,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교회가 됩시다.” -정삼수- -김상오님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