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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오해와 진실(III)!

“(1) (생명으로 인도하는, 율법으로 막힌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 13-14>

성전마당에서 율법적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골방으로 들어가서 그 성전 마당의 희생 제사가 무엇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전 마당에서 눈에 보이는 차원의 것들로 아무리 열심을 부려 보아야 그렇게 열심 부린 만큼 멸망에 가까워질 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감추어져 있는 은밀함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은밀한 골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그 문이 아닌 옆의 크고 넓은 문을 선택하지요.

크고 넓은 문은 사람들 구미에 맞는 문 이라는 말이고 반대로 좁고 협착 한 문이라는 것은 장애물이 많아 좁아진 문을 뜻합니다. 그 좁고 협착한 문도 원래는 큰 문이었는데 그 큰 문에 장애물이 놓여 좁은 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게 ‘스테노스’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입니다.

그 장애물은 누가 놓은 걸까요? 선악과 패러다임 속에 완전히 장악되어 버린 인간의 마음이 그 장애물을 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진리라는 내용을 가진 열린 문입니다.

그런데 선악과 책 속의 아담들은 그 진리의 문 앞에 율법이라는 장애물을 놓고 스스로 못 들어가고 있는 형상입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장애물로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 이니라”

< 롬3: 20>

율법의 문으로는 아무도 못 들어가는 것이 진리라는 문의 본질입니다. 인간들이 율법으로 장애물을 쌓아 버리면 아무도 못 들어가는 문이 진리의 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두 마음으로 가진 이들에게는 진리의 문은 생각하기도

싫은 좁은 문입니다.

‘하나님 처럼’의 교만한 삶을 추구하고자하는 자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지는 그 은혜의 문이라는 것은, 율법의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좁은 문인 것입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 세인들이요.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 가려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23: 13>

이게 좁은 문입니다. 율법의 장애물에 막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천국의 문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선악 책 속 의 아담들이 진짜 크고 넓은 진리의 문을 자기들 안의 율법의 두 마음으로 협착하게 막아버렸다.

그게 하나님이 보시는 이 세상 속 진리의 문의 현실입니다. 좁고 협착 한 문,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막힌 문입니다. 선악과 패러다임의 인간들은 그게 구미에 맞아요. 인간의 열심과 노력과 희생과 헌신으로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크고 넓은 문이거든요.

하나님과 상관 없는 불신 자들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포용력 있는 문처럼 보입니다. 아담들은 그 율법의 문으로 몰려 듭니다. 어차피 주어진 육신과 세상 자원으로 열심을 부리기만 하면 되거든요.

외식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진리 같은 골치 아픈 것은 몰라도 되고 복음 같은거 사모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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