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항섭 신창 아트리안 조각전에 붙인다!
현대 철학의 귀재인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파리에게 병 밖으로 나가는 길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라고 철학을 설파했다면,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병 안의 파리에게 춤추고 노래하며 꿈꾸게 하여 현실의 중력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될 것이다.
그런즉, 예술은 독특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철학뿐만 아니라 소위, 문학과 역사, 인문학의 문사철을 모두 포함하면서 인간 능력의 한계를 보게 하고 지경을 넓히는 동시에 영원성을 지향해야하는 자아성찰의 구도자적 가치추구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중력에 자유하는 통찰력 있는 예술가라면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정제된 인성과 감성을 기반으로한 영성의 세계로 자연스레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누가 인생은 스토리라 했던가?”
인생이 스토리라면, 당연히 예술 행위도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인생 고뇌와 깨달음의 사유를 예술 작품을 통해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승화해 나타내야 할 것이다.
결국,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혼을 담은 예술 작품에 자신만의 특별한 깨달음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야기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각가 전항섭은 타고난 이야기 재주꾼이다.
작가의 사주에 나무 목(木)변이 줄줄이 사탕으로 얽혀져 있지는 몰라도 나무를 소재로한 그의 예술 작품은 토속적이면서 소박하고 구수하기까지 하여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소시적 방앗간 창고에서 흔히 만나는 정다운 소품을 보는 듯 편한 기분이다. 아마도 인정 많은 작가의 성품이 나무 조각 작품에 제대로 반영된 탓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막상 그의 작품 앞에 마주 섰을 때는 보는 이로하여금 정다움보다는 신비로움과 경건함으로 마음을 추스르게 한다. 전시 조각품의 제목을 보는 순간, “아 하!”하는 큰 숨을 쉬게 하는 것은 전시 작품의 큰 주제가 ‘나무 경(經)’이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나무 경전’이다. 나무가 주는 깨달음의 교훈을 마주하듯, 작품의 입상들이 마치 부처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듯, 십자가 고난을 연상하게 하는 구도의 길에 매진하는 구도자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예술한다는게 어찌 구도자의 일편단심, 오직 한 마음으로만 매진한다고 해서 예술이 요구하는 필요충분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면죄부를 부여하겠는가? 단연코 없을 것은, 예술은 신앙의 경지를 뛰어넘는 생명창조 활력에너지를 제공하는 사명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예술가의 예술 행위에는 은밀하면서도 치밀하고 또 치열한 예술혼이 전제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야기꾼, 전항섭 조각가가 이번 신창 아트리안 조각전을 통해서 그가 표현하고자 의도했던 생명창조 작업의 의미가 새로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근본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사랑의 속성인 ‘은밀성’과 ‘치밀성’과 ‘치열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우리 삶에 더욱 풍성한 한마당 예술 축제가 되기를 바래본다.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