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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떠나 하나님과 함께 숨 쉬는 기도(祈禱)!

여전히 내가 제일 못 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다.

누구는 이를 두고 기도 줄이 막혀 있다고들 한다.

그렇다. 기도의 줄이 막히거나 끊어져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기도 줄이 막혔다는 것은 생명과 진리의 길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의미다. 왜 벗어나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을 진지하게

스스로 한 번 물어 본다.

은밀한 골방에서 하는 기도, 통성기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기도,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기도, 말씀을 근간으로 하는

기도 그리고 중보 해야 하는 기도 등등.

너무나 엇갈리게 하는 것이 기도이고 또 해야 할 종류도 많다

보니, 기도하기 위해 앉는 것조차도 두렵고, 앉는다 하더라도 앉는

순간부터 떠오르는 세상만사 온갖 잡념으로 오 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항복하고 만다.

기도는 나를 강하게 하기보다, 나를 약하게 한다. 동기가 어디까지나

나에게 집착 되는 한, 조금도 기도의 문을 열 수가 없는 게 바로

기도의 어려움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기도는 능력이라고 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을 경험하고

알 수가 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숨이라고 할진데, 기도 없이는

그분과 하나 되는 숨을 나눌 수 없다.

한시도 그분과 연결되어 있는 영의 숨을 놓칠 수가 없다.

그것이 기도이다. 만나와 같이 하루도 그치지 않고 그분을 찾는

것이 기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따로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삶에 녹아져 있는 것이 기도가 아닐까?

몸과 마음과 온 정성이 삶에 이머징(Emerging)해서 혼연일체가

된 것이 기도이다. 삶이 기도가 되도록, 일상이 바로 기적의 현장이

되도록, 땀이 피가 되는 연단과 인고의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하겠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따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태복음 14:23>

여기서 주목할 말은, ‘무리를 떠난 것’과 ‘따로 계신 것’이다.

삶이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따로 떠나서 삶이 전적으로

드려지는 온전한 자세가 되어야 한다. 세상과 구별 되는 삶 자체가

기도의 근본이 되어야한다는 이야기이고, 이를 두고 크리스천이라고

불리어 질 수 있겠다.

크리스천은 일거수일투족이 구별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고 이는 하나님의 숨을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 즉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교회에서 하릴없어 기도만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짜 기도하는 사람은 아픕니다. 사람들이 보는 시선과 다릅니다.

깨끗하게 정화된 물에 더러운 물이 합쳐지면 그 깨끗해진 사람은

또 아픕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감당 못하니 함께 지워주는 것입니다. 금식을 하며 나를 비워낸 것보다 더 싸워야하고 이겨야하고, 기도자를 통해 같이 죽어야 중보기도를 받는 사람이 깨어납니다. 어떤 날은 코피 터지고 머리카락 한 움큼씩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안고 품습니다. 그들이 내안에 들여보내 주신 분은 제가 아닌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끔 힘들어 할 때는 또 한 영혼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면역이 될 만도 한데, 사랑이 부족하여 그저 주님께 의뢰하고 의지하여 돌파합니다. 그들도 주안에서 굳게 서서 견고한 믿음으로 또 자신들의 예수를 전파하길 바라면서. 주님으로 인해 사랑이 익어갑니다~~샬롬^^*] -김금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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