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속이는 허망한 것들!
[삶이 굳이 긍정적일 필요는 없다.
‘긍정의 효과’라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비극적 낭만’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나약한 이는 비극을 통해 무너지지만,
강한 자는 슬픔을 바탕으로 삶을 돌파해낸다.
슬픔은 결코 약한 자의 단어가 아니다.
슬픔이야말로 나의 이성을 환기시키는,
현실이라는 전쟁터 속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자현님-
세상에 흔하게 회자(膾炙)되는 말 중에 가장 혐오(嫌惡)스러운
말 중에 하나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비겁한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直視)하지 않고,
현실을 왜곡되게 이끌어 가고자 하는 의도를 엿보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다시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가야할
참 인생의 길을 구부리고 감추어서 우리 안, 깊은 곳에 내제되어
있는 진실의 실상(實像)을 가려서 ‘위로(慰勞)와 치료(治療)’라고
하는 허상(虛像)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 되게, ‘일꾼’ 되게, ‘지도자’가 되게, ‘약함 중에
강하게 하고자 우리를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교묘하게
왜곡(歪曲)하여, 고난 중에 인내와 연단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게 하는 대신에 인간중심적(人間中心的)으로 스스로
서게 하여, 하나님을 배도(背道)하게 하려는 사탄의 교묘한
술책임을 냉철히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길은 하나님을 대적(對敵)하여 서게 하려는 교만의 길,
사망의 길, 멸망으로 이끄는 길이다. 긍정적 마음이란 ‘죄와
타협하려는 하와의 허망한 마음‘이었고, ’하나님과 타협하려는
사울왕의 불순종의 마음‘과 같다.
거룩함이란, 제사보다 순종함이 낫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함이란, 비록 99.999999% 일지라도 100%에 미치지 못하는
한, 하나님 앞에서는 고개를 들고 바로 바라보며 설 수가 없다.
예수님 외에는 모세를 포함한 그 누구도 하나님 전(展)에서
신을 벗지 않고 설 수가 없다.
인간이 바라는 어떠한 행위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그분이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과
‘능력에 순종하는 낮아진 자세‘이다. 결코 긍정적인 마음과
힐링의 변명하는 엉터리 도피처가 아니라, ‘통회(痛悔)하는
죄에 대한 회개’와 ‘절대절망의 낮은 자세‘를 구해야 하겠다!
(댓글 모음)
[깊이 공감합니다. 윌빙 재탕해서 팔아먹는 힐링 장사, 긍정하라고
윽박지른 잘난 사람들 좀 지겹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홍윤진님-
Bravo! 인간을 약하게 하는 수많은 속임수가 인문학이나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지만, 결국 이것들도 사리질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안에 진리 되는 영혼의 생명이 없는 박제된 전리품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영원한 미래를 직시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미련함 때문이지요.
[진실하고 독실한 Christian은 신약 Bible만 믿는다.
최근에 한국에는 사이비 목사들 나타나 성경을 제멋대로 왜곡 설교하면서 cult-개인숭배-기독교를 만들고 있다. 신비기독교나, 기적기독교,
우상숭배 기독교, 개인숭배, 기독교를 추방하자.]
-Kyung Sup Han님-
성경의 역사와 종교 전반에 관해서 블로그에 올리신 자세한 내용을
잘 보았습니다. 많은 참고가 됩니다. 언어의 발생기간과 칸트와 헤겔로 나타나는 순수 이성과 논리 과학과의 관계와 이후 마르크스와 다윈과
니체의 출현도 흥미 있게 보았습니다.
진화론과 지적 디자이너의 개념도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무엇을 주장하고 자 하시는 뜻을 뚜렷하게 보지 못했습니다.
신약 바이블만 믿으시는 믿음의 배경이나, 어렵지 않으시면 그 외
다른 주장이 있으신 것들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성의 있는 comments 감사합니다. 단축 설명합니다. 구약은 유대교의 bible- Torah이며 Jesus를 부인한다. Bible은 the books-책 아라는
뜻이고, 반듯이 저자가 있다. 자고로 역사신화에는 저자가 없다. 구약도 저자가 없다. 구약은 Jesus 가 탄생 할 때까지의 역사신화이다. 그리스도교-기독교는 Bible의 original 은 Greek 되어 있으며, Jesus Khristos(Greek key 없씀) Khristos-기름을 부음 의 뜻, 영어-Jesus Christ, 중국어 耶蘇 基督教, 한국은 중국에서 한자를 차입 하여 예수 기독교 이라고 하였다. Jesus-耶蘇-예수를 생략하고 Christianity, 基督教, 기독교로 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신약을 믿고 구약은 역사신화 참고서이다. 많은 기적과
신비가 기록 되어 있다. 21세기의 지식인은 창세기와 같은 신화를 믿지 아니한다. 미개인이나 문맹자들이 믿는 신앙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계 모든 인구가 지식인이 되기 전에는 존속 할 것이다. 한국은 지금 12세기의 Dark Age- 종교암흑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종교에서 깨어나자.]
역사적인 성경관과 신화적인 성경관이 혼합된 논리인 것 같습니다.
유의해야하는 사항은 우리가 인정하고자 하는 신약의 저자격인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실 주장하시고 계시는 신화에 입각한 구약의 모든 내용을 충실히 글자 하나 틀리지 않으시고 인용도 하셨고 또 충실히 따르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까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구원자로서의 일을 온전히 담당하셨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는 구약을 완성 시키셨다는 의미로 “다 이루었다” 하시며 숨을 거두신 것이지요.
물론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과의 구별은 분명히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구약을 육적 이스라엘에 만 집약해서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은 자칫 내용을 왜곡 시키는 위험을 자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구약을 포함한 성경은 지역과 시간을 넘어서는 중요한 우리
인류 모두의 유산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글이군요.
인간 편에서 인생을 위로한다고 하나님의 법칙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고통스럽더라도 참 바른 진리를 찾으려는 냉철하고 정확한
글이군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너무나도 본능적 자기방어보호적인 사고로 살아가다보니 자기핑계, 자기합리화, 인간중심,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지요. 사단에 속아 비진리가 참인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된다고, 70억 인생들이 안 믿고 부정한다고
사람에겐 불멸하는 영혼이 있고 영혼이 가야할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있는 것을 없다고 안 믿는다고 한들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들의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진리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성이 있으시면 정말 세상을 변화시킬 문필의 권능을 받으셨군요. 보기 드문 글을 만나게 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구하동 목사님-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평소에 감동 받은 느낌을 우연히 만난
말씀에 댓글로 달은 것을 완성시켜 본 것이랍니다. 글을 쓰는 동안
성령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을 늘 느끼면서 기뻐하고 감사드리며
완성해 보았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섬세한 음성을 들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샬롬!!!]
-구하동 목사님-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도 함께 주셨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그것은 ‘자녀(Sonship)되는 것’과 ‘사도의 기름 부음
받음(Kingship)’의 결과 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신약 Bible 만 믿음이다. Bible은 제멋대로 해석하고
믿는 신앙은 cult 그리스도교라고 합니다. 1 에서 5 까지는 Bible에
써 없어요. 21세기에 창세기에 창세기를 믿는 신앙과 처녀가 애기를
낳았다고 믿은 신앙은 아니오, 그리스도교는 신비, 기적을 믿는 기독교가 아니오. 그리스도교는 Jesus 사랑의 철학을 믿는 것이고. 똑바른
기독교를 믿읍시다. Jesus는 개인의 행복위해 십자가의 사형을 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
Jesus의 사랑의 철학으로 세계만민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위해 목숨
바친 것이다. 종교에는 항상 신비와 가 따르게 되어 있다. 우리는 신비나 기적을 믿는 것은 이단이다. 예수 사랑의 철학의 그리스도교를 믿고 바른 기독교로 인도하자.] -Kyung Sup Han님-
이제 이해가 갑니다.
철학, 인류 보편적인 행복, 세계만민 평화, 신비와 기적과 같은 키워드를 사용하셨네요. 소크라테스, 부처님도 그랬고 공자도 마호메트도
그런 선한 의도를 가진 분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겠지요.
저도 그렇게 여겼고 그렇게 여기고 싶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존경하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지요. “나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과 행위만 전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믿는 자들만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지요.
자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지요.
그분을 존경하고 따르는 유일한 이유는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이지요.
신뢰한다는 것은 그분이 거짓말을 절대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진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릇의 비유가 있고, 죽과 딱딱한 음식의 재미나는 비유가
있습니다. 세상철학의 말에도 흔히 사용되는 가르침이 있다면,
“내가 키운 그릇 용량만큼만 세상의 이치가 보이고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제자인 도마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너희가 보는 것으로 믿느냐? 보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하셨지요.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 다녀 온 자가 아니면 결코 천국의 비밀을 알 수 없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공생애 내내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가르치셨지요. 그분은 지금 바로 이 자리에 우리들에게
실상(實像)으로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문자로 역사로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지요. 그분은 우리가 원하고
소망하는 만큼만 하늘 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우리의 원함과 상관없이 강권(强勸)으로
좁은 길을 가게도 하시지요. 그래서 그런 분들은 상황이 어려울수록
늘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답니다. 하나님의
섬세하신 간섭하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이해가 되시지 않으시더라도 인내하는 자는 다른 세상을 만나는 복을 받는답니다. 저는 다행히도 가시는 길을 이미 걸어 온 사람이지만, 이제는 가시고자 하는 길을 제가 먼저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보지 않은 곳은 가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갔다 오신 분의 의견을
깊이 청취하는 것도 지혜의 축복이지요.
사람의 가치는 나이도 세상 권세도 아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비례한답니다. 하나님의 영이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은 눈을 가리고
인생 길을 달려가는 사람과 다름이 없지요.
이 진리의 길은 어떤 자존심도 세상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의
이론으로도 깨달을 수 없는 다른 하늘 세상의 논리임을 이해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