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력으로 생존하는 부패와 부정의 부류
[(관료기구는 내버려 두기만 해도 비대해진다.
관료세계 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자기 보존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동류” 바꿔 말하면 “기생충”을 늘리는 방법으로
비대화를 실현한다.)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삽화입니다 펜과 창이 한 몸이 된 에밀졸라가
보이고 우측으론 저승사자 같은 관료의 모습이 보입니다. 드레퓌스는
독일에 기밀문서를 넘겼다는 혐의로 프랑스 군사재판에 회부 됩니다.
필적이 유사하다는 이유 외엔 그가 간첩혐의를 뒤집어 쓸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와 군부는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비난받는 국민의 시선에 대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와 이해타산으로 드레퓌스를 군 형무소에 감금합니다.
물증이 확실한 진범이 나왔음에도 그들은 진범 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이때 에밀졸라는 펜을 들고 분연히 일어납니다. 르몽드를 비롯한 일간지에 “나는 고발한다” 라는 장문의 기고문을 올립니다. 수십 년 작가로서의 명예를 걸고 하지만 그도 희생양 결국 그도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에밀졸라는 삽화처럼 붓으로 저항하지만 까닭모를
가스중독으로 사망하며 비운을 맞습니다. 결국 프랑스 국민들은 분연히 일어나고 프랑스 정부도 더 이상 드레퓌스를 감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드레퓌스는 결국 십년의 지난한 수형생활을 마감하고
절반의 자유를 찾습니다.
관료들의 대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거는 이루 열거할 수 없습니다] -엄대웅님-
모 TV에서 진행한 ‘백지영 아나’가 진행하는 프로에서 관료들의
비리와 잘못으로 인한 억울한 케이스를 들어 인터뷰하는 장면을
목격한 바가 있다. 동기는 유태인의 입장과는 다르겠지만 그야말로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황당한 내용이었지요.
익산 경찰서에서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기소한 어느 청년이 억울한
감방생활을 하든 중, 군산 경찰서에서 진범이라고 자백한 자를
검거했고 또 그를 도와 준 동료가 증인으로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백방 뛰어 다녀도 익산 경찰서에서는 물론이고 검찰에서
조차 재수사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관료들의 책임 회피하고자하는 좁쌀 근성을 부릴 때마다
정의는 사라지고 모두가 국민들의 몫으로 되어 진다는 사실이지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비단 가난한 국민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소위 손가락 받는 재벌들도 사실은 관료들에게
얼마나 많은 더러운 꼴을 당하는지 상상을 초월한다는 진실입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생존의 법칙에 익숙한 기득권(旣得權)을
누리는 사람들은 결코 잡은 물고기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한 번 사는 모든 인생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다는 것이고,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최후의
승리의 말씀 약속을 증거로 가지고 있는 믿음의 자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다는 진실입니다.
[교수님,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제가 이렇게 당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