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사람을 보는 지혜!
[-사람을 보는 아홉 가지 지혜-
1. 먼 곳에 심부름을 보내 그 ‘충성’을 보고
2. 가까이 하면서 그 ‘공경’을 보며
3. 번거로운 일을 시켜 그 ‘재능’을 보며
4. 뜻밖에 질문을 던져 그 ‘지혜’를 느끼고
5. 급한 약속을 하여 그 ‘신용’을 알며
6. 재물을 맡겨 ‘어짐’을 보며
7. 위급한 일을 알리어 그 ‘절개’를 보며
8. 술에 취하게 하여 그 ‘절도’를 알며
9. 남녀를 섞여 있게 하여 그 ‘이성에 대한 자세’를 보라
-무릇 사람의 마음은 산천보다 험하고, 하늘을 안다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하늘과 산천은 사계를 뚜렷이 보이고. 아침과 저녁을
느끼고 보이나. 사람은 꾸미는 얼굴과 깊고 미묘한 감정 때문에
알기가 어렵다. -孔子-] -작성자: 정석원-
사람을 보는 아홉 가지 지혜라고 해서 페친들과 나눠 봅니다.
인간은 다 이기적으로 움직이는 갈대와 같은 것이지요.
충성이 있다한들, 신뢰가 있다한들 그것이 무어가 그렇게
대수로운 일일까요? 인격이란 이렇 듯, 오십보 백보의 차이에
지나지 않지요.
지혜란 좋은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람을 보는 지혜가 어디 그렇게 만만하면, 아홉 가지나
되는 어려운 항목을 구차하게 늘어놓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차라리 마지막에 공자가 늘어놓는 넋두리가 사람을 보는
참 진리의 해답인 셈이지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이야기 이지요.
이가 뜻하는 바는 결국 이기심으로 인해 인간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아홉 가지 사람을 보는 지혜를
내 놓은 것은 믿지 못하지만,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기구한
모순적존재(矛盾的存在)이기 때문이겠지요.
미워해야 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애증(愛憎)의 관계가 바로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라는 운명적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혜에 대해 명료하게 정의를 내린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고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했지요. <잠언 9:10>
성경에는 어디에도 사람을 아는 지혜에 대한 잔소리는 없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근본 지혜를 가지면, 사람을 분별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워지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아니면 차라리 사람을 보는 가치가 수용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성경은 공자가 설파 했듯이 인간은 모두가 악하고
믿지 못할 죄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지요.
다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 밭에
새겨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격의 표현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나게 되고, 이들을 우리는 성도로서 믿음의 의의 형제로서
함께 영광의 십자가 길을 동행해야 할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랍니다.
예수님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을 말씀과 성령으로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불쌍한 영혼으로 인해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어,
알곡과 쭉쟁이가 구분되어 갈라지듯이 서서히 그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