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부인한 초인(짜라투스트라)의 사랑, 영혼(靈魂)!
[오늘의 나를 죽여야 내일의 내가 태어날 수 있다.
오늘의 나를 완전히 죽여야 내일의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나로 변신하려면 기존의 나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너는 네 자신의 불길로 너 스스로를 태워버릴 각오를 해야 하리라.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거듭나길 바랄 수 있겠는가?]
-니체-
오늘의 나, 내일의 나.
기존의 나, 새로운 나.
태워 버리지 않고 어떻게 새로이 거듭 날 수 있는가?
니체의 놀라운 인생 고백이란다.
이분이 누구이신가?
“신(神)은 죽었다!” 라고 선포하신 분이 아니었든가?
그런데 자기 깨달음의 내용이 거의가 성경적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같은 의미로 성경에는 옛사람, 거듭난 사람, 구습, 겉 사람,
속사람, 육과 영과 같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육과 혼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되어야 한다는 요지는
일치한다고 하겠다.
옛 것을 완전히 허물지 않으면, 그 위에 새 것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은 명확 관하 하다.
그러나 니체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육에서 영적인 세상으로
발전하는 것보다는 정신적 사고의 성장 발전에 대한 내용에
국한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知.情.義로 대변되는 인간의 육을 기반으로 한
‘혼적(魂的) 성장의 진정한 변화’는 육을 기준으로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영(靈)으로 향한 상향평준화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우리 인간은 육과 혼과 영의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동물도 육과 혼은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속성인 영은 지니고 있지 못 하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동물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혼을 꾸준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인간 문화적인 방향으로 개발 시키는가 하는
데에서 동물의 본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혼이 육의 그릇에 묶여 정욕과 자랑으로 남을 건가?
아니면 우리가 혼을 잘 훈련 시켜서 육의 본능을 극복한,
거룩한 하나님의 영역이신 영의 세계로 나아가느냐 하는
갈림 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한 마디로 영 안에 융합(Fusion)된 순수한 혼을 우리는
영혼(靈魂)이라고 부르게 된다. 영혼이라 함은 혼과 영이
혼연일체(渾然一體) 되어서 하나 되는 것이고 이를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라고 부른다.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는 순종하는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주님으로 섬기는 크리스천을 일컫는다.
니체가 생각하는 인간의 변화는 아무리 기존의 나를 태어버린다
한들 육의 본능적 한계, 오늘의 나를 벗어 나 영원한 내일의
날을 맞이할 수없는 혼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가 신이 없다고 외친 것은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심적 압박감(죄성, 열등감)에서
나온 메아리 없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니체의 불은 짜라투스트라의 불, 성령의 불은 아니지요.
그가 말하는 변신은 오히려 眞我를 찾고자함이 아닐까요?
그것은 重生과는 전혀 반대죠.] -박래구님-
기독교의 가르침은 예수님 외에는 진아, 즉 참 생명과 진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중생에 지나지 않는, 또 다른 변질된
중생이라는 것이라고 가르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