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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마치 줄타는 곡예와 같은 것!

인생은 마치 위태로운 줄타기 곡예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지하철을 이용해서 출퇴근

시간 길을 가득 채우고 늠름하게 다니는 것을 보면, 줄타기

곡예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만 어렵게 줄타기 하는 것이 아닌 것이 확실한 것은,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길에서 나름대로의 깊은 상처를

모두가 예외 없이 가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세상을 헤쳐 가는 육적 인생 길 뿐만 아니라, 영적 인생을

추구하는 길에도 고공 줄타기하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잇는 헬라철학의 원조들도

결국은 각 자의 철학 기조가 세월에 따라 변하게 될 수밖에 없는

유사진리(類似眞理)의 파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만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교훈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이 이 시대에 돌아와서 한 테이블에 앉아서 현대철학

사조(思潮)를 대하고 있다면, 어떤 기분들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정말 묘한 생각이 든다.

“변하지 않는 철학은 없다“는 정의가 유효해지면, 철학의 본질은

결국 진리와는 무관한 한낮 실없는 만담(漫談)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유별나게 분별력을 강조하는 곳이 바른 영을 추구하는 분야라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인 일이라 하겠다. 그만큼 영성을 추구하는

인생이 두꺼운 안개에 싸인 것 같은 오리무중의 길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고 그만큼, 바른 길을 선택할 확률이 줄어든다 하겠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애매한 길, 구원의 길, 진리에 다다르는 천국

길을 ‘좁은 길, 좁은 문’이라고 비유로 말씀하셨고, “내가 오는 날에

나를 영접할 자가 있겠는가?”고 한탄하신 것 아니겠는가?

하늘나라에 다녀오셔서, 말씀으로 실제로 증명하시고 전하신 분은

예수님 외에는 아직도 한 사람도 없으니, 그분이 재림 하시는 날까지는

왜 하늘나라 가는 것이 줄타기 곡예만큼 어려운지? 확인할 뾰족한

길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가짜 선지자와, 예수님 이름을 파는 가짜

메시아가 설친다고 하셨으니, 더욱 영성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목표물에 다다를 위험 요소가 증가될 전망은 더욱더 확실한

사실이라 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좁고 험한 길인데, 유사 목적지 이정표가 여기다

저기다 하고 활개치고 유혹하고 있으니, 어찌 영성 하는 자들의

가는 길이 안전하다고만 하겠는가?

결코 분별되지 않고, 정의될 수 없는 무정형이신 하나님을 찾아

다니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길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길은 우리가 평범하게 걷는 길이 아니라, 하늘에서 하늘이 열리고

내려오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든가, 예수님과 같이 구름에

싸여서 올라가든가, 엘리야처럼 불마차를 타고 기분 내며 올라가는

범상한 모습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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