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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十字架) 도(道)’는 부활(復活)을 위한 작은 겨자씨!

구하동 목사님,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함께 나누겠습니다.

[Kwack 교수님?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조주 참 아버지를 만나 기쁨을 누리시는 날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물과 공기 한 방울도 내 것이 아닌데 이 땅에 나의 소유는 없고 모두가

창조주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것이지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하셨으니, 저의 모든 글과 사진 등 모든 것은 주님 영광을 위해 제게 인사도 남길 필요 없이 얼마든지 사용하세요. 사용하셔서 전도해 주시니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지요.

모든 영광을 성삼위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샬롬!!!]   -구하동 목사님-

다시 감사드립니다.

혹시 각 제자들의 순교한 연유와 어떻게 순교를 하셨는지

설명이 될 수 있는지요? 베드로, 바울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요.

[♥열두 제자와 사도들의 순교 ♥

1. 야고보(James 주후 44년)

처음으로 우리가 만날 순교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인데 야고보의

순교는 스테판이 죽은 후 약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이는

헤롯 아그립파가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자마자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을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매서운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을 때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2. 빌립(Philip)

그는 채찍에 맞았으며, 감옥에 갇힌 후,

A.D. 54년에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3. 마태(Matthew)

그는 파티아와 에디오피아에서 사역을 하였고, 에디오피아에서 박해

받았으며 A.D. 60년 나다바에서 미늘창으로 살해당하였다.

4. 작은 야고보(James the Less AD 63)

94세 때 그는 유대인들에게 구타당하고 돌로 맞아, 결국 뇌에 손상을

입고 순교했다.

5. 맛디아(Matthias AD 70)

맛디아는 다른 대부분의 제자들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명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돌 매질을 당하였으며 후에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했다.

6. 안드레(Andrew AD 70)

안드레는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에데사에에서 붙들려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는데, 땅에서 십자가의

두 끝을 수직으로 못 박혀 죽었다.

7. 마가(Mark AD 64)

마가는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 의하여 그들의 우상인 세라피스를 기리는 웅장한 종교 의식을 할 때 순교 당하였다. 그는 무자비한 처형 방법으로 몸이 찢기며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8. 베드로(Peter AD 69)

주님을 배반하고 저주했던 그는 주님의 놀라운 용서를 체험한 후 머리가 땅으로, 다리가 위를 향하는 자세로, 즉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는 이렇게 주님과 같은 자세로 죽을 만큼 자신이 고귀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9. 바울(Paul AD 69)

처음에는 사울이라 불렀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숭고한 희생과 말할 수 없는 수고를 치룬 후, 역시 네로의

박해 아래서 순교하였다. 로마 병사들에 의해 바울은 마을 밖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갔으며, 그곳에서 바울은 기도를 마치고 칼에

목이 베여 순교당했다.

10. 유다(Jude)

그는 A.D.72년 에데사(Edessa)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11. 바돌로매(Batholomew 바돌로매 / 나다나엘 AD 70)

바돌로매는 여러 나라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잔인하게 폭행당하였으며, 포악한 우상 숭배자들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12. 도마(Thomas AD70)

도마는 디두모(Didymus)라고 불리며, 파티아와 인도에서 복음을

전했고, 이곳에서 이교도 제사장들을 격노케 하였다. 그래서 그는

창으로 몸이 관통되어 죽었다.

13. 누가(Luke AD 93)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이며 복음 전파자이다.

그는 바울과 함께 많은 나라에서 선교하였으며, 그리스의 우상 숭배

제사장들에 의하여 올리브 나무에 목이 매달려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14. 시몬(Simon)

시몬의 다른 이름은 젤로(Zelotes)이다. 그는 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Mauritania)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영국에서도 선교하였다.

A.D. 74년에 그는 영국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15. 요한(John AD 100년경)

이 “사랑받는 제자”는 큰 야고보(James the Great)의 형제이다.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강제 송환 명령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는 형을 받았었다. 그러나 끓는 기름 가마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를 입지 아니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 후 도미티안(Domitian)은 그를 밭모 섬으로 추방하였고, 요한은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도미티안이 후계자인 네르바가 요한을 재 송환하였다. 그는 사도들 중에 유일하게 참혹한 죽음을

피한 사람인 셈이다.

16. 바나바(Barnabas)

바나바는 사이프러스(Cyprus) 출신이며, 유대인 자손이다.

그는 약 A.D. 73년경에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계속되는 모든 박해와 끔찍한 처형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매일 성장하였고, 사도들과 사도직분을 수행했던 형제들의 가르침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으며, 그 위에 성도들의 피가 풍성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무려 7명의 제자들이 그 끔찍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것은 성령의 능력, 주님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내가 죽어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죽으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매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한 영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 분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

독생자의 끔찍한 죽음을 지켜보기만 하셔야했던 하나님께서 독생자에게 갚아주신 것만큼 그 분을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에게 엄청난 영광으로 갚아 주실 것을 기대하며,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순교 자료를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도’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할렐루야. 교수님.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도를 이해하시니 정말

감사하고 기쁘네요. 전 50년이 걸렸고 몇 차례 피눈물 맛을 보고

인생을 접고서야 주님께서 깨닫게 하시더군요. 감사합니다. 샬롬!!!]

ㅎㅎㅎ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도를 깨닫는 것이 값없이

받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십자가는 막연한 상징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죽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나를 죽이는 일입니다.

이를 십자가의 도라고 부른답니다.

지금의 교회에서는 신약의 예수님을 포함한 제자들의 죽으심과

순교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고, 구약의 선지자들을 제외한 부유했던

족장들만 성경의 축복인양 가르치고 있는 것이 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는 ‘오직 예수’를 부르짖고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이 제공하신 제자들의 순교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매우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린 모습만을

마치 장식품인양 교회에 걸어놓고 고통도 죽음도 없는 막연히

고상하고 도도한 모습으로만 상징화 작업에 열중한 면이 없지

않았지요.

‘주님의 종’이라는 아름답고 낮아진 말보다는 ‘주님의 사도’라는

존칭으로 구별 받고 싶어 하는 바리세인들의 교만의 모습으로,

열두제자를 위시한 수많은 초대교회의 거룩한 순교자들을 자기들과

동등한 자리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수많은 목회자들 및

어울리지도 않는 치렁치렁한 박사가운을 걸친 목이 곧은 교회

지도자들의 거짓 가르침이 만연해 있는 것이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현실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들어서 초교파나, 의식 있는 독립 교단의 지유활동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고, 그동안 기득세력에 의해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핍박받아 오던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적이고 탑 다운이 방식이

아닌, 횡적이면서 유기적인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서히 초대신앙공동체로 회귀되고 있는 것은 종말에 마지막 ‘남은 자’와 ‘이기는 자’로의 구별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하는 기대와 확신을 가져 봅니다.

주신 순교하신 분들 한 분 한 분을 묵상하면서, 육을 기쁘게 내어

놓으신 그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경험하고

싶은 가난한 심령의 마음이 간절한 생명의 계절입니다.

그분들의 죽음을 나의 죽음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인내하고

기도하는 훈련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이때에 너무나

적절한 사진을 실어주심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보석 같은 마음을 주셨네요. 오늘 하나님께서

귀한 분들을 만나게 하시는군요. 예수님 닮아 멋지게 아버지 일 하시고 영생천국에 함께 꼭 들어가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정확한 안목을 잘 표현하셨네요. 욕심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연막탄에 마음과 영들이 혼미하게 되어 속고 있는 거지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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