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를 누구라 하는가?(267)
-그림: 김준회 님-
(외투의 성탄절: -이우근-
예수가 이 세상에서 소유한 것은 오직 두개의 나무토막, 태어날
때의 말구유와 죽을 때의 십사가 뿐이었다. 그는 초라한 한 칸의
집도, 작은 예배당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군중과 손을 잡지 않았다.
예수의 삶은 마구간에서 시작해 광야를 거쳐 십자가에 이르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메시아의 탄생은 고난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한국 교회는 그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가.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토마스 칼라일이 ‘영혼의 평안과 소망이 달려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고백한 이 엄숙한 물음에 한국 교회는
가난한 마음, 고뇌 어린 영혼으로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대답이 준비돼 있지 않다면 그저 또 한 번의
흥청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몸통은 없이 껍데기만 댕그라니 나앉은 빈 외투의 성탄절이.)
-유남용 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평생 고민해야 할 우리들에게 주신
주님의 십자가 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예수’라 부르고, ‘임마누엘’이나 ‘메시아’라고
부르지요. 베드로의 고백도 우리의 고백으로 Copy 해 볼 수
있겠지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럼 과연 나는 주를 누구라고 하지요?
그리고 교회는 주를 누구라고 하지요?
그 어깨에는 세상 잘 나가는 권세를 다스리시는 정사를
메었고(Government will be on His Shoulder), 세상
맘몬을 제공 하시는 금으로 만든 그 우상의 이름은
기묘자(Wonderful)요 또한 모사(Council)라,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라, 세상의 평강을 이루실 왕(Prince of King)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아닌가? 심히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남보다 우월하기 위해서, 힘 좋으신 하나님의 백을 믿고
까부는 신앙 깡패와 다름없는 영적 패륜아는 아닌지?
예수님이 오신 이 숭고한 날을 한 번 더 자신의 영적 얼굴을
비춰 보고 과연 내가 주님을 길을 예비하는 자인가?를
회개하는 다행스러운 시간을 가진 것을 감사하게 여길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