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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참 의미는 ‘영원한 예배‘를 허락 받는 것!

“우리는 너무 많은 예배의 홍수 속에 예배의 영성을 상실하고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반복해 왔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에 익숙해진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사1:11)라고 책망하신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교회에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 보다 예배를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종교 세속주의 혹은 실용주의적 예배 개념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자신의 죄를 분명히 들여다보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과정 없이 심리적인 위안만을 구하는 종교 감성주의적 예배를 우리는 극복해야 할 것이다.

예배에는 통치자 하나님을 만나는 깊은 감동. 자신의 깊은 죄성을 들여다보며 애통해하는 회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따뜻한 용서와 회복. 미래를 향한 우리의 결단과 헌신이 모든 영적인 요소가 들어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릴지라도 그 안에서 이 같은 영적인

것들을 깊이 체험할 수 있다. 예배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박동섭 목사님-

“예배의 영성을 상실하고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곳이 선교지다. 선교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Appollo Gyu Jeong 님-

포인트를 잘 지적했네요. 한국 교회 내부가 얼마나 큰 선교지인지를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구원의 참 의미는 ‘영원한 예배를 허락 받는 것’이라는 말씀이 좋습니다. 시작도 예배요, 끝도 예배인 것이 우리 성도에게 허락된 시공간을 초월한 특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담이 세상의 흙으로 만들어졌고 둘째 아담인 예수님이 하늘에서 나신 것처럼, 우리가 썩어질 육으로 썩지 않을 영원한 영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예배도 우리의 육신의 산영에서 머물지 말고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예배를 사모해야 하겠지요.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신은 무익한 것이라고 하였지요. 죽어 있는 우리 안의 속사람이 살아야지 하늘에 속한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능하겠지요. 죽어 있는 속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성경 66권으로 나를 재건축해서 예수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덧 입혀져야 하겠지요. 그래서 비록 이 땅에 육으로 살고 있지만, 회복된 속사람,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이 땅을 왕의 권세로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장차 올 아름다운 성, 새 예루살렘에 이 왕 노릇 하는 지상의 삶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히 예배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것이겠지요.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로고스를 레마의 말씀으로 띄어 주실 때, 비로소 내 영에 생명주시고 우리 자아를 건축하십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5장에 언급 된 죽은 자의 부활의 모습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 속사람이 레마의 말씀으로 새 생명을 얻고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되겠지요.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깊은 가르침이 떠난 곳은 거짓 예배가 횡횡하게 되는 원인이 되겠지요.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실 때 천국이 실현된 것처럼, 성령님께서도 하늘에서 우리 안에 내주 하실 때, 진정한 예배의 처소가 완성될 것입니다.

♡안응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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