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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역사문제에 대해 말하니, 확실히 공격적인 댓글이 많이 달린다.

마르크스주의 내지 좌익적 역사관이 여전히 파워풀하다.

나는 이게 우리의 자의식이 스스로를 약자라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맑스는 확실히 약자의 정열과 감정에 불붙인 사람인 것 같다.

맑스는 강자의 저당함과 온당함, 그리고 강자가 왜 정의로울 수 있는지,

설명하고 정당화할 이론적 능력이 없다고 보인다.

맑스도 문제지만, 거기에 편승하는 약자의식이 더 문제가 아닐까?]

-안정석 님-

모두가 약자라는 개념이 기독교의 기본 사상이 아닐까요.

그것은 강자도 약자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유일 평등사상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는 미움도 차별도 갈등도

없는 오직 의와 희락과 평강만 있는 지상 천국 인격이 형성된답니다.

[“CHRISTIANITY MADE THE WORLD WEAK.” 자기 조국 이태리가

분열되고 외세에 유린당하던 시절, 애국적 충정을 가진 마키아벨리의

말입니다.]

기독교에서 약하다는 개념은 강하다는 개념을 나타내는 기독교적

언어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호소함은 하나님의 강함을 연결하는

통로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약함이나 죄인 됨의 하향평준화(下向平準化)를 주장하는 것 같지만,

기실은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는 최고의 상향평준화(上向平準化)를

이루는 것이랍니다.

마르크스가 간과(看過)한 면은 지상에 있는 한정된 자원으로

인간의 채우지 못할 본능을 채우고자한 순진한 무모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지요. 영원히 마르지 않고 부족함이 없는 하늘의 풍성한

자원의 보고를 바라보지 못한 초등 학문적 우(愚)를 범한 것이지요.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린도후서 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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