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예수를 찌르는 자에게 오는 넘치는 축복!
“”내 안의 죄 죽이기”(존 오웬) 중에서(2) 치유와 평화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님을 찔렀다는 사실을 알고 애통하게 된다. <슥12:10>
심지어 그분을 위해서 애통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분에게 상처를 준 자신들의 죄를 증오하게 된다. 또한 진정으로 치유 받기 위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주님이 찔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Godpia.com-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로마 장교의 회심(回心)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지요. 그가 창으로 찌르는 순간 옆구리에서 터져 나온 예수님 보혈(寶血)로 직접 터치된 자로서, 죄인 중에 괴수였던 그가 그 어마 어마한 예수님 보혈의 축복을 살인하는 현장에서 인류 최초로 체험하게 된 것이었답니다.
<스가랴 12:10> 말씀에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가 예수님을 찔렀다는 사실을 알고 애통하는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어떻게 예수님을 창으로 직접 확인해서 살인한 로마병사가 보혈의 축복을 받도록 허락하였을까요?
공의(公義)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창세기에서 구약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도 율법에 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 벌레만도 못한 자에게 그렇게 큰 축복을 나리셨을까요? 도무지 인간의 모든 논리를 동원해서라도 알 수 없는 일을 하신 것일까? 그렇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한량없이 부어지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값 없이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겁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아무 조건이라도 있기만 하면, 그것을 핑계 삼아 사랑을 부어 주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과 관계(關係)만 하면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긍휼(矜恤)한 마음을 잘 나타내는 증거가 됩니다.
로마 병정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는 것 같이 그가 비록 예수님을 살인했을지언정, 그가 예수님의 보혈이 갑옷에 묻었다는 이유하나로 영벌(永罰)이 아니라 영생(永生)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믿음의 경중(輕重)과 우리의 공과(功課)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믿음’이라는 편리한 이름으로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하시는 것이고 그 ‘실낱같은 관계의 인연의 끈’으로 해서 우리를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 예수님을 찌르는 직접적인 체험을 하지 못하면, 예수님과 애통하는 관계까지 깊은 소통의 관계를 가지지 못 한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그를 깊이 애통(哀痛)하는 회개(悔改)의 단계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체험을 하게 하는 소중한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옆구리를 찌른 자로서의 깊은 애통하는 자
이 하나님 독생자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의 심장(心臟)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최악의 경우로서는 이렇듯 하나님의 관계하심을 애써,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선의(善意)로 내미는 손에 침 뱉는 자들이지요. 성경에서는 이를 무지한 백성이라 일컫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 도다 하시고 깊은 한탄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애쓰시는 동안에 그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가 준비하신 마지막 열차가 역에 당신을 위해 정차해 있을 때, 못 이기는 척하면서라도 구원(救援)의 방주인 ‘현대판 노아의 열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좋은 때가 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지금은 성령의 때요, 은혜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