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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험 받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2014.04.05

선악을 구별하고 판단하는 것이 선악과를 범한 죄인인 우리들의 자연스러운 행보라고 한다.

그리고 선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우리들의 열심을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악하게 사는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 악한, 독사의 자식이라고 부르셨다.

그러니,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다고 하니,
어찌 세상 사람들이 이를 두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올리지 않을 도리가 있었겠는가?

그럼, 선과 악의 행위의 구별을 떠난 믿음의 상태는 과연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것일까?
세상적으로 좋고 나쁨의 구별도, 선하고 악한 구별도 없는 상태란, 모든 것을 하나로 녹아 버린 상태가 아닐까? 

그 상황을 ‘만물을 구별없이 하나로 받아들이는 상태’, ‘용서의 상태’, 즉 ‘사랑’이라고 부른다.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순종하면서, 나와 너의 둘이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상태로 서로 녹아 있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 지는 것을 영광을 나눈다고 한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인성, 즉 하나되는 사랑을 실현하신 분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 되고자 하지만, 늘 흔들리는 갈대처럼 하나 되지 못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자아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독립된 행위에 얽메일 때마다, 깨달음으로 회개하는 한, 예수님의 하나님과 하나되신 말씀을 따라서 안식을 얻고, 영광의 자리를 나누는 곳으로 다시 돌아서야 한다.

영광의 자리에 돌아서기 위한 끊임없는 우리들의 바라 봄의 갈증, 하나 되고자 하는 목마름의 열정이 바로 깨달음과 회개라는 도구로 동시에 다가 오게 된다. 이를 영안이 열린다고도 하고, 눈에 가린 비늘을 들어낸다고다 표현하기도 한다.

‘회개를 통해 천국을 얻는 것(회개는 천국의 조건이 아니다. 조건 없이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슨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은혜의 현상)’이 곧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사랑의 실천이다. 늘 시험 받는 세상 속에서도 이길 수 있는 것은 회개를 통한 사랑이 실천 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아를 십자가에 내어 놓는 예수님 사랑의 실천이다.

“은혜를 입었다고, 선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명제에서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분면히, 진리의 관점에서는 선한 일을 따지는 자체가 무의미 하다.
그러나 당신의 상황이 진리 안이 아니라, 진리 밖에 있다면,
소위, 불순종의 종으로서, 선과 악한 행위에 대하여 구속 받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진리와 짝하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문제로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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