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세상에 안주하지 말고,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마음 고생이 많으셨네요. 인간이 편리상 만든 법은 그냥 일상의 법에 지나지 않지요.
사실 모든 법짓거리들이 매 한가지 입니다. 그러니, 법을 주관하는 인간들은 허무한 것들을 가지고,
씨름 하느라 얼마나 생머리가 아프겠습니까?

그들은 ‘법대로’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부족한 내용인지를 알면서도 정의가 아니라,
권위와 전통을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조직의 먹거리를 지키느라 하릴없는 인생을 바치고 있는 불쌍한 인간들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허지만,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도 세상이 그래도 이 정도로 악행이 유지되는 것만 해도
그 허무한 역할이 존재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법은 법일 뿐이고,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코걸이 귀걸이 장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또한 자나갈 대상에 지나지 않는 허무한 가치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뿐이지요.

그러나 이를 통해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약함을 통절히 깨닫고, 어리석은 인간을 기대하고 믿기보다는 영원히 변치 않는 완전한 진리나 하나님과 생명의 길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질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전화위복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래도 공평한 것은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시고 예비하신 준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에는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서 불행하고 억울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지르는 억울한 탄성으로 세상천지가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는 것처럼, 온통 새까맣게 타고 있습니다.

세상 고난을 통해서, 세상에 안주하는 무지한 자세에서 벗어나, 하늘을 목말라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억울한 세상 이웃과 함께 눈을 들어 산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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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겪은 재판 일로 모두들 주변의 나쁜 이웃을 만난 탓이라 위로한다.  내가 다른 보통 사람들과 정말 다른 것 같다. 나는 그 이웃이 그렇게 밉지는 않다.  한번도 논리적이지 않은 그냥 잠시 정신이 나간 듯 사는 사람이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재수 없이 나쁜 ?…아니면 힘없는?… 아니면 나약한?… 판사 4명을 만났을 뿐이다.  판결문을 뭐라 쓰지 못해 4년동안 여러가지 핑계로 이리저리 별 말도 없이 시간을 끌었는지 아니면 아닌 것을 뻔히 알고도 차마 어찌 판결을 못했는지 그 속은 내가 다 알 수 없다.  만약 판결이 빨랐다면, 예상대로 원고의 증거가 불충분하고, 근거 없으니 기각이 예상대로 빨리 되었다면, 나중에 화해하고, 뭐 그런 보통 이웃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김영란 법으로 얼마의 뇌물도 안되는 판에 누군가의 부탁으로 거듭 무리하게 재판이 지연되는 바람에 애매한 판사들 고민속에 겨우 3백 정도의 손해배상 판결이 햇수로 4년을 끌었다.  세월호 사건처럼, 명확한 해명이 안되면 피해자는 악해지고 독해지는 것을 보았다. 이 경우도 재판의 이유없는 애매한 태도 때문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점점 더 피해자로 된 경우이다. 

사도신경을 보면 예수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는 문구가 나온다.  어려서부터 수천번을  전교인이  낭독할 때마다 나는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빌라도는 가해자라기 보다, 오히려 예수를 건져내려 했고, 죄가 없다고 자신은 느꼈으며, 그러다 밀려오는 압력에 할 수 없이 판결을 하고는 자신은 죄가 없다고 손을 씻었다. 그러나 전 인류가 지금은 그의 이름을 예수에게 고난을 준 사람으로 낭독을 한다.  즉 판결의 중요성, 자신이 처한 권세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과연 성경은 뼈저리게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성경에도 재판할 때 가난한 자를 편들지 말라고 잠언에 적고 있다. 판결의 공정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또한 말하고 있다. 나는 나를 고소한 이웃도 나빴겠지만 자신이 관여했던 돈을 지불하고 고소인을 채용했던 이러한 재판에 관여함이 분명했을 그 어떤 청탁에 판사들이 무력했다는 것에, 이것을 막는 어떤 시스템도 없다는 이 것이 문제이다.  이 재판에 관여한 안복열, 김민철, 오성우, 최석문, 판사이 네 분들은 이 재판에 관여한 입김에 넘어진 자들이다.  빌라도 처럼, 나는 예수가 아니라 할지라도, 판결로 인해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낸 지울 수 없는 죄인들이다.”
– 송보성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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