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오늘에 충실한 삶이 순종하는 삶이다!

주어진 ‘오늘’ 외에는 어떤 것도 나와 연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성실한 삶의 자태가 ‘순종하는 삶’이 이닐까요?

흘러간 과거는 이미 죽어 사라진 것이고, 미래는 하나님 만이 아시니,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천기누설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이미 죽어 사라진 것을 사모하는 것도 하나님의 심기를 건들이는 것이지만, 미래에 대한 천기누설을 어슬프게 찝적 대는 것도 생각해 보면 모두가 다 내가 중심에 서 있는 교만에 의한 잔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심히 경계하는 부분이지요.

오직 나에게 허락 된 오늘 이 순간에만 충실하게 허락된 한발자국의 발걸음을 단단히 내딪는 것 만이 하나님에 속한 피조물의 소명을 성실히 실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육의 죄성으로 살아야하는 부족한 존재로,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죄와 더불어 피나는 싸움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를 떠난 어떤 기대도, 약속도, 칭찬도, 예언도, 기적도, 사실 우리와는 전혀 관계 없는 하나님 스스로의 사업이기에 우리는 그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가진 육을 영으로 죽이면서 거듭나는 참 거룩함의 믿음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 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Ye have not yet resisted unto blood, striving against sin. And ye have forgotten the exhortation which speaketh unto you as unto children, My son, despise not thou the chastening of the Lord, nor faint when thou art rebuked of him:

For whom the Lord loveth he chasteneth, and scourgeth every son whom he receiveth. If ye endure chastening, God dealeth with you as with sons; for what son is he whom the father chasteneth not?
But if ye be without chastisement, whereof all are partakers, then are ye bastards, and not sons.

Furthermore we have had fathers of our flesh which corrected us, and we gave them reverence: shall we not much rather be in subjection unto the Father of spirits, and live?

For they verily for a few days chastened us after their own pleasure; but he for our profit, that we might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Now no chastening for the present seemeth to be joyous, but grievous: nevertheless afterward it yieldeth the peaceable fruit of righteousness unto them which are exercised thereby.

Wherefore lift up the hands which hang down, and the feeble knees; And make straight paths for your feet, lest that which is lame be turned out of the way; but let it rather be healed.

Follow peace with all men, and holiness, without which no man shall see the Lord:
Looking diligently lest any man fail of the grace of God; lest any root of bitterness springing up trouble you, and thereby many be defiled;

Lest there be any fornicator, or profane person, as Esau, who for one morsel of meat sold his birthright).”
<히브리서 12:4-16>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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