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울의 불편한 점을 불편해 한다!
아침에 지기와 도울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침 공고롭게도 난세 이야기가 떴네요. “내용이 불편하지만 가려 봐야한다”는 의미가 비평 중에 너무 쉽게 무시되고 무너진 느낌이었습니다. 그 불편함을 왜 독자들이 오롯이 덮어 쓰야하는지?
그래도 그 부분을 언급을 해주시는 것이 님의 비평의식에 잘 어울리는 듯해서 잠시 일탈을 해봅니다. 도울이라서 넘어간다? 는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 시대 정치를 ‘난세’라고 정의하고자 하는 도울의 의도 자체가 불편함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는 독자들에게는 난세일기는 단지 제목을 위한 책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 아닐까?
난세일기는 정반합의 세상 근본 이치에서, 플러스 개념에서 마이너스 수의 개념이 자리하는 것 같이, 당연히 한 부분을 차지 해야할 존재 이유와 권리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자신주장과 다르다는 이으로, 남의 정치를 개정치라고 선언하고 입에 개거픔을 물고 덤벼든다는 진실입니다. 그렇다고 대안이 제대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야말로 선동을 위한 선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도울사상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분의 생각이나 입에서 개정치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때에는 그분도 개망나니 도라이라는 단어를 들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야 공평한 게임이 되는 셈이고 그런 비평이 자연스러워질 때 독자들이 느끼는 도울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질 겁니다. 그래야 공평하니까요. 도울이라해서 실랄한 비평 정신의 칼끝이 무뎌지는 것? 그것은 더구나 아닙니다.
더욱 실랄하게 저질 난세일기를 비평해 주시는 용기 있는 님의 비평을 격려하고자 하오니, 부디 다음 포스팅에는 난세일기가 주는 불편함에 대한 비평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도천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