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사랑이 아니라 생명이야!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을 물안개와 같지 않은가요? 그래서, 그래도 내 안에 붙들어 놓은 생명을 끌어내어 봅니다.
시인은 사랑이 아니라 생명으로 쓰고, 우리도 생명으로 노래하며 누리고 삽니다. 사랑은 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허상의 속임수지만 생명은 절대로 책임지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생명은 영원한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각자는 누구나 안고 있는 배반하지 않는 생명을 찾아서 무한한 생명력으로 서로 소통하고 또 발산하면서 고유의 생명 콘텐츠로 해서 자아를 풍성하게 꾸미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허상이기에 언제나 배반으로 돌아오지만 생명은 변하지도 변덕스럽지도 않아서 언제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실체인 생명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세요. 바보야, 사랑이 아니라 생명이야!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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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과 꿈과 바다 이야기) 전봉건
이 창가에서 들어요.
둘이서만 만난 오붓한 자리
빵에는 쨈을 바르지요
오 아니에요.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예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 먹어요.
이 불빛 아래서 들어요.
둘이서만 만난 고요한 자리
잔에는 포도주를 따르지요
오 아니에요.
우리가 둘이서 잔에 따르는
이 포도주는 포도주가 아니라 꿈의 즙
우리는 진한 꿈의 즙을 가득히
잔에 따라 마셔요.
나는 당신 앞에 당신은 내 앞에
둘이서만 만난 둘만의 자리
사실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오 배가 불러요
보세요 우리가 정결한 저를 들어
생선의 꼬리만 건들어도
당신과 내 안에 들어와서 출렁이는
이렇게 커다란 바다 하나를.
■출처 : 『전봉건 시전집』, 문학동네(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