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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진리의 오해?

“《누운 배》의 세상이 그려내는 풍경은 진실을 코앞으로 들이밀어 그 진실에서 풍겨 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맡게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진실이 축적되며 이윽고 누운 배가 일으켜 세워지는 장면에 도달했을 때, 소설은 최근의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든 어떤 거대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ㅡ 이혁진 저, 한겨레출판  ㅡ

이 아침에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만나 본다. 

아직 책을 접하지는 않았기에 좋은 소설이라고 단정하기 보다는 좋은 의도로, 좋은 소재로, 좋은 때에, 좋은 소설을, 좋은 신문사에 당첨 되어, 좋은 소설로 인정 받게 되었다는 좋은 의미를 좋게 해설하고, 작가와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접하면서, 좋은 소설이라고, 좋게 판단하고, 좋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평한다는 것은, 이렇듯, 모든 과정에 좋다, 나쁘다의 호불호를 통해서 판단을 해서 선택의 과정이 좋은 것으로만 취사선택이 되어 결국은 좋은 것으로 결론을 내어지는 것이라는 것이고, 이 과정을 통해서 세상은 늘 좋은 쪽으로만 방향을 잡고 진행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우리 인생의 복잡한 진행 과정이 마치 0와 1의 이진수법으로 결정 되는 디지털 해법의 근본 원리와 똑 같이 결정되어 왔다는 사실을 새로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이미, 성경의 창세기에서 언급된, 인류 최초의 인간이 시작한 생명과와 선악과 사이에 서서, 선택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간 스스로 인류 문화를 세워가는 최초의 시도였다는 사실을 인정 안 할 수가 없다. 

선택이라는 수단이 인간 존재의 유일한 가치로 추구되는 이때부터, 인간은 신으로 부터 떠나게 되면서 독립적인 찬란한 인류 문화를 가꾸면서 살게 되는데, 이는 어떤 면에서 신이라는 진리를 포기하고, 인간의 선악과, 즉 선택에 의해 추구되는 진실을 취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신의 진리가 세상 인간의 진실로 양분 되어 나누어졌다는 이야기다. 재미 있는 사실은 신의 진리의 섭리 대신에 인간의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진실 공방이 시작 되는 순간에 모든 것이 하나의 통일된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인 호불호의 두 가지로 나뉘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진실의 마지막 선택의 과정이 다다르는 곳이 진리라고 여겨지는 듯 하다).

진리의 세계에는 모든 것이 신이라는 절대 권위 아래서 어느 것 하나 흐트르짐 없이 진리의 영 아래에서 일사불란하게 하나로 물흐르 듯 흘러가지만, 진실의 세계에서는 늘 두 가지를 두고, 상대적인 비교 우위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진리와 진실은 두 가지 확연히 다른 근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진실의 마지막 다다르는 지점이 진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진실이 추구하는 끝점이 진리와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극단적으로 상반 되는 대척점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의 끝점은 인간이 세운 피라미드요, 만리장성인 바벨탑으로 귀착 되게 된다.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선택을 통한 진실의 추구행위는 진리를 부정하는 인간 중심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사회가 신과 인간이 합일한 행태의 아날로그 시절의 막을 내리고, 인간 중심의 선악과에 해당하는 이진수를 이용한 디지털시대를 연 것은 또 다른 바벨탑을 세우는 것이고, 머지 않아 신의 심판, 은혜의 시대가 마감하고 서서히 종말의 시대가 임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종말이 임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이분법으로 대표되는 진실의 갈등 시대가 마감 되고, 진리로 하나 되는 완성의 시대가 도래 됨을 예고한다고 하겠다.

지금 세상에는 진리와 진실이 혼재 되어 있어서, 진리에 사는 하늘 백성과 진실에 입각해서 사는 세상 백성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종말의 시대가 임하면, 진실은 불 태워지고, 진리만 남아서 찬란한 영광의 완전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간 행위는 후패하고, 믿음이 성하게 되는 시대가 완성된 것이라 하겠다.

♡ 응재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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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들의 편의를 위해, 필자가 바쭤해 정리한 내용을 아래에 첨부해서 포스팅해 보았습니다: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가짜 진실도 만들어내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일을 잘하기보단 줄을 잘 서야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원인을 찾는 게 아니다.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 윗선에 업무를 요청해봤자 실무를 떠안는 건 말단 직원들이다.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나고 있고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잖아요. 소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힘이 다 쏠리게 되고 그 힘으로만 조직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쳐나가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들이 안 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데 치중하는 식의 사고방식이 있고, 책임을 다 같이 나누어지니까 내 책임이 아닌 게 되고, 어떤 잘못도 내가 책임을 지지 않으니 해결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이런 과정이 깔려 있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해요.

일도 잘하면서 사람들한테 너그럽고, 똑똑하고 창의적이지만 그것들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다양하게 많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자신이 젊다는 자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켜나가고 관리해나가려고 애쓰는 게 진짜 젊음인 것 같아요.

현명하게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고, 좋은 것에 자신을 맞춰서 살아가려고 하는 거겠죠. 그렇게 따라가지 못하는 걸 반성하고,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기기도 하고요. 저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매우 인간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없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되나’ 싶은 이야기들을 지금 뉴스에서 보고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느 지점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정말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없어지거든요. 잘해나가려고 애쓰고, 그러지 못했을 때 수치스럽게 느끼고, 그런 것들이 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현명한 사람이라는 건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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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월급이란 젊음을 팔아 얻는 것이다” | YES24 모바일 문화웹진 채널예스

http://m.ch.yes24.com/article/view/3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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