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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함이 없듯이, 이 세상에는 행복도 없다!

“완전함을 전제로 놓고 부족한 것에 주목하는 사람은 불행을 본다. 하지만 똑같은 삶이라도 불완전함을 전제로 놓고 좋은 것에 주목하는 사람은 행복을 본다. 그런데 행복이 인간 삶의 궁극의 목적인지는 좀 고민을 해 봐야 한다.” ㅡ 보아님 ㅡ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론 전개에 약간의 무리가 있네요. 삶의 불완전함을 전제로 놓는 데, 완전함과 그 맥을 함께하는 행복을 논하는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요? 사실 삶의 불완전함 자체가 불행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완전함이고, 이는 완전한 행복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고 할까요? 

어쨌든, 인간 삶에는 행복의 존재는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게 존재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응재 ♡

이 글은 이론 전개가 아니고 일종의 시에요..ㅋ 근데 ‘완전함과 행복이 그 맥을 같이 한다’와 ‘불완전함 자체가 불행이다’와 ‘인간 삶에 행복한 존재는 없다’와 ‘인간은 불완전하기 위해 태어났다’의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ㅡ보아님 ㅡ 

물론 보아님이 생각하시는 의미는 너무나 명박합니다. 운동량 보존의 법칙과 같이 인생의 행복량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당연히 ‘초장 끗발은 개끗발’인 거지요. 그러니 지금 부족함을 전제로 하는 한, 나중에는 풍족함 만 남겠지요. 시작은 작으나 나중은 창대한 것만 남는 격이지요. 그래서 인생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정상을 경험할 일만 남는 겁니다. 

그러나 잠시 가는 걸음을 멈추고, “과연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인 인간 행복론에 대해 곰곰히 생각 해 볼 때에 세상 만사가 무상이라는 현상계 안에서는 영원한 것이 없기에, 행복 또한 먼지와 같이 바람에 사라져 버릴 허무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행복이 없다는 의미론을 드린 겁니다.

무슨 근거로 이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딱히 근거를 댈수는 없지만, 이 근거는 경륜에서 나온다는 정도는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경륜이란, 세상 정의를 바르게 하기 위한 달음박질을 먼저 경험해서 그 길의 이정표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경륜이란, 시간의 함수인 연륜에 의해서 먼저 가 본 것을 말 할 수 있으니, 일종의 학자금을 먼저 지불한 거지요. 그렇지만 이를 결코 개인의 경륜으로 치부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리란 보편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 보편적 진리를 이해하게 되면, 세상 정의가 단순하게 놓여지게 됩니다. 물론 늘 부분에서 온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진리를 바라 보는 연약한 인간의 심정이겠지요. 

진리에 가까이 다가 간다는 것은 개인의 존재감이 부인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영감을 통한 대화가 그 수단이 되겠지만, 여기서 굳이 개인을 들어 이야기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느낌도 드네요. ♡ 응재 ♡

근데요.. 저는 항상 고민되는건 자신이 보편적 진리를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는데 누구의 말이 옳은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궁금해요.. 연약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고 자신이 믿는 사람이 옳을지 안 옳을지는 운일 뿐인 걸까요? ㅡ 보아님 ㅡ

ㅎㅎㅎ 이미 위에 비슷한 느낌을 언급해 놓았습니다. 결국, 결정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하겠지요. ♡ 응재 ♡ 

저는 그 모든 것이 개인 자신의 몫이라고 하는 것이 부당한 것 같아요..ㅎㅎ 그래도 제가 선생님의 생각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의 생각으로 존중드립니다..^^ㅎ ㅡ보아님 ㅡ

존중을 받으려고 드리는 댓글도 아니지요. 

먼저 수긍해야할 것은, 진리에 관한 이해를 불완전한 언어로만 접근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과대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부당 만부당 하는 이야기입니다. 절대로 우리는 누구도 진리를 이해했다는 말장난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한 이를 증명할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것을 이해하는 정도가 그래도 진리를 이해 하는 것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해 주는 것이 바른 배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모순성으로 인해서 자신은 죽도록 진리를 이해하려 발버둥 치면서도, 정작 다른 사람이 진리에 대한  화두를 던질 때에는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것도 진리를 대하는 겸손한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언급을 해 봅니다. ♡ 응재 ♡

혹시 제가 방어적 태도를 보여  불쾌하셨다면 깊이 사과 드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들이 있지만 서로 마음이 상해서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함께 대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ㅡ 보아님 ㅡ

괜챦습니다. 마음이 상하는 것은 나의 소관이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절대로 상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드린 겁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말씀 드렸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응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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