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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유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같은 자전거를 타기에 더욱 공감합니다. 자전거 탈 때 늘상 마주하는 문제입니다.

이어폰끼고 걷는 몰상식한 친구들과 길 중앙으로 지그재그로 걷는 사람, 개 목걸이를 길게 하고 전화 하느라 정신 잃은 사람, 커브를 마구 달려오는 자전거 매니아? 등등.이루 손 꼽을 수 없지요?

​문제는 이들의 문제에 집중하느라 가끔은 잠시의 방심이 나도 그들과 같은 피해를 주는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고의 위험이 없었던 날은 그야말로 평온한 축복으로 감사하고, 순간 방심을 했을 때면 더욱 감사에 감사를 더합니다. 자전거가 주는 성취감에 비하면 이 정도의 위험은 새발의 피인셈입니다.

♡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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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다 부딪힐 뻔한 두 사람)

어제 오후 3-5시까지 한강을 끼고 자전거를 탔다. 남들 일하는 시간이기는 하지만, 내 일의 시간은 학기 때를 제외하고는 출퇴근이 따로 없다.

​한강을 달리는데, 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도 갑자기 도로 중앙으로 침입했다. 사고가 또 날 뻔했다. 나는 놀라기도 해서 그 사람(편견이 개입할까봐 나이대와 성별은 모두 말 안 하기로)에게 “선생님, 그렇게 갑자기 끼어드시면 안 됩니다. 누가 오는지 살펴봐 주세요.”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세상 차분한 목소리로 “예, 알아요.”라고 답변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탄 상태이니 더는 말하지 않고 지나갔지만 약 5분간 너무나 황당했다. 왜 그는 “미안합니다.”나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예, 알아요.”라고 답하는가. 그 태연한 태도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도 했다. 도대체 진솔한 사과가 없다. 부분적으로는 가해자를 ‘말살’하려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겠다.

​한강을 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곳에서 시위를 적지 않게 하였다.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이 거기에 잠깐 정신이 팔려서 그곳을 바라보며 내 앞으로 자전거를 몰아왔다. 나는 소리를 높여 주의를 주며 벨을 울려 댔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하게 방향을 돌리며 당황한 듯 연신 사과를 했다. 이 일은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돌아와서 게르하르트 로핑크의 책을 읽었다.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두 일이 있고 나니 새삼스럽게 읽힌다. “전략상의 이유”가 아니어도 자기 죄를 인식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행위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의 맥락에서도 순기능을 한다. 죄에 대한 강조로 개인에게 과도한 죄책감과 불안감을 심어주는 역기능도 있지만 말이다.”

-Sine No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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