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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生命)의 빛이여, 내 안에서 부활하라!

밤이 깊어 가고, 가까이 낙수치는 소리와 가끔은 찬바람이 불어 재끼고 있는 이곳,

​북한산 자락에서 열어 재친 창가에 의자를 붙여 놓고, 묘한 자세로 페이스 북을 보고 있다.

여기서 지바고와 라라의 기구하지만, 처절한 이야기를 되새김 받고 있다.

“조직은 사라지지만, 개인은 남는다.” 감동적인 말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지바고의 휴머니즘을 러시아 공산 조직의 혁명 조직의 좌파와 우파의 덧없이 몰락을 빗대어 결론한 이야기이다.

사람은 약하디 약하지만, 그의 생명은 경계를 넘어서 강하기만 하다. 생명은 죽지 않기 때문 일거다. 휴머니즘의 매력은 생명에 기원을 두기 때문 일거다.

지바고와 라라의 만남이야말로 겨울의 하얀 혹서(酷暑) 속에서, 그들의 사랑의 휴머니즘이 화려한 생명의 꽃으로 거듭 피어난다. 그 생명을 보았기에 내 마음에 영원히 지바고와 라라의 아련함이 남아, 이 밤에도 더위와 시간을 잊게 한다.

“오, 나의 아름다운 생명이여,

이 밤에 내 안에서 영원히 부활하라!”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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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 타계한 오마샤리프를 추모하며!)      – 정형두님 글 –

러시아는 전체가 눈과 침엽수와 대륙 철도가 어우러진 그림이요 한 편의 시다. 그리고 파스테르나크와 닥터 지바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작가는 제정 러시아와 혁명의 시기를 소설처럼, 영화처럼, 한 편의 시처럼 살다가 갔다.

소설이 완결되는 시점과 작가의 삶이 무르익는 시기가 비슷한 점도 이채롭다.

이 소설에서 전개되는 지바고의 혁명적인 활동은 이 소설 전체의 서정적인 분위기에 알맞게 물들어 마치 한 편의 긴 시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닥터 지바고는 제국주의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혁명가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휴머니스트요 시인이다.

한 길로 살기 힘든 격동기에 그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기 고유의 무늬를 아름답게 살리고 있다. 그는 권위와 출세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가정을 가졌지만 가정 안에서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안주하기엔 너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토냐의 남편이자 라라의 연인이다. 라라와의 불륜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엔 너무 시적이고 아름답다. 지바고가 불이라면 라라는 장작 같다. 라라는 황진도 아니고 백설 공주도 아니다. 라라는 자기 자신의 정조를 유린한 정부이며 의붓아버지인 고마로프스키 대한 복수로 권총을 겨눌 만큼 주의 주장이 분명하고 행동주의자다. 그녀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운다.

그녀는 지바고와 동지이면서도 색깔이 다르다.

그녀는 지바고의 다른 색깔을 부각시키는 누비이불이다. 지바고는 결혼식장에서 정부를 쏘아 죽이는 장면을 인상 깊게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부상자를 치료하는 종군 의사와 간호사의 신분으로 만나게 된다. 이 때 라라는 혁명투사이고 출세주의자인 퍄샤의 약혼녀였다. 파샤와 지바고가 동지적 관계라면 지바고와는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둘은 당시 암울한 시대를 비추는 횃불이면서도 러시아의 해변을 아름답게 달구는 캠파이어다.

이런 저런 관계들이 얽히고설키어 서정적 재미와 서사적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잠깐의 축제는 끝나고 다시 러시아의 혁명정부가 세워지고 토냐의 고향인 유리아틴으로 지바고는 이주하게 된다. 거기서 우연히 라라와 만나서 다시 사랑의 불길을 당기게 된다.

토냐는 이 사실을 알지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빨치산 간사인 파샤는 라라와 지바고 와의 사이를 알게 되고 빨치산 캠프로 잡아들인다. 성경에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다. 결국 퍄샤는 자살하게 되고 지바고는 우여곡절 끝에 빨치산 캠프를 탈출하게 된다. 지바고의 생사를 알수 없는 토냐는 가족을 이끌고 러시아를 떠난다.

지바고는 빨치산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라라를 만나게 되고 라라와의 유리아틴의 라라의 사랑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포위망은 좁혀지고 지바고는 사랑하는 라라를 다시 떠나보낸다. 그리고 다시 방항 하다가 우연히 열차에 탄 라라를 보게 된다. 열차가 정지할 무렵 반대편에서 달려오다. 심장마비로 지바고는 죽게 되고 이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역사의 방향과 인생의 방향이 항상 엇박자로 굴러가는 운명의 장난이자 역사의 아이로니 속에 한 개인의 지켜야 될 소중한 가치들이 어떻게 짓밟히고 있는지를 서사적이며 서정적인 빛으로 조명하고 있는 소설이다.

러시아는 제국주의에서 공산주의로, 공산주의에서 다시 민주주의로 열차의 노선이 바뀐다. 그런 과정에서 이념과 관계없는 순수한 가족과 연인들이 몰락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는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그 돌에서 개구리 일가족이 자다가 몰살을 당한다는 사실을 극좌파나 극우주의자는 알아야 한다. 결국 개인의 가치가 무너지면 집단의 가치도 붕괴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나중에 라라와 지바고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통해서 지바고가 다시 재조명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봄이 오면 러시아의 휴머니즘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적기가가 살벌하게 하늘을 찌르던 러시아의 거리에 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를 연주하게 된다. 지바고는 죽지 않았다. 러시아는 죽지 않았다. 민중은 죽지 않았다. 신은 죽지 않았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왼쪽이든지 오른쪽이든지 지켜야 될 소중한 가치가 있다. 지바고는 죽을 때까지 이 가치를 지켰다.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을 파괴하는 좌파와 우파는 몰락했다. 그리고 몰락한다. 역사가 바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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