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등에 지고!
무엇이 이 땅에 평강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평강이 있으라” 고 하셨다.
성경의 계시가 이미 다 이루어져 있는 완결판인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도 이미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가 처음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강’ 이라고 선포되었다. 이렇게 평강이 있으라고 선포된 뒤에는 육신의 눈으로서는 전혀 이를 수용하고 이해할 만한 일이 일어나기는 커녕, 도리어 평강과는 거리가 먼 육신의 죽음이라는 대사건들이 벌어진다.
예수 승천 이후에 열두 제자는 모두가 비참하게 순교하거나 이에 버금가는 살육을 당했고, 예수 탄생이후에는 두 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 평강의 인사로 해서 대참사가 행해졌지 않은가? 과연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인가? 하늘의 말씀이 단지 인사 치례로 치부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예수님 자신이 구세주로서 그분의 존재 자체를 우리에게는 평강이라고 정의 되는 것인지?
예수님이 인카네이션 한 자체가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 계시가 이루어진 것이고, 십자가 위에서 이를 다시 확증 완성해 주셨다. 계시의 완성이란, 하늘의 영광이 이 땅에 미쳐서 이 땅에도 평강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고,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하늘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확인한 것이라 하겠다.
평강이란, 화해나 용서나 사랑이라는 기타 다른 용어처럼 하늘의 의미를 담은 계시의 뜻을 담고있을 뿐이다. 평강이란, 하늘의 영광이 미친다는 의미이고, 이로 인해 이 땅에서는 세상 의미로 평화 시대를 누린다는 의미와는 전혀 반대로 실현된다. 예수가 빛으로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어둠에 익숙한 백성들은 빛을 환영하기는 커녕 오히려 죽기로 빛을 미워하고 핍박하기로 하여 급기야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여인의 후손인 예수 탄생을 막기 위해서 뱀의 후손인 사단 마귀 세력들은 당시 태어난 모든 어린 아이를 도륙하는 세기의 살인 행각을 저지러지 않았는가? 결국 하늘의 평강은 이 땅에서는 거꾸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자행 되어야 하는 있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하늘 백성들은 살육과 핍박을 받는 것으로 평강을 증명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라고 해야 하겠다.
선택 받은 하늘의 백성들은 필히 십자가를 지는 아름다운 수고를 동반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을 때에 이를 평강이라고 하나님은 정의해 주셨다. 이 땅은 광야라고 한다. 광야에서는 삶의 안락이나 평강을 기대하기 보다는 삶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협과 궁핍과 사망 만이 도사리고 있다.
누가 광야에서 평강을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 다만 광야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대한 소망만 있을 뿐이다. 이 땅의 지옥 광야에는 평강이 없기에, 하늘 나라인 천국 가나안을 향하여 기를 쓰고 달려 가고자 하는 것 아닌가?
이 땅에서 십자가는 천국 평강으로 인도하는 보증 수표라고 하겠다.
우리 성도가 크리스천으로서 다른 세상 사람과 구별하게 하는 것은 십자가 밖에 없다.
천국 백성은 모두가 예수의 본을 받들어서 필히 십자가를 등에 지고 천국 사다리를 올라가야 하리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