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특권?
아직도 떨어질 낙엽이 더 있나 보다.
간 밤에 나린 비가 마지막 남은 잎새를 촉촉히 적셔서 가지를 떠나게 한다.
바람이 불 때 마다, 후드득 뿌리면서 흩어지는 빗방울은 나무 가지 아래로
지나는 우산마다 세차게 흔들어 챈다.
밤 사이 치열했던 모기와의 전쟁이 언제 그랬던가 싶도록 평온한 아침이
어김없이 안방으로 찾아 온다. 밤의 무게는 세상의 현실 세계를 더욱 가중하게
짓누르게 하는가 보다. 그래서 밤은 전쟁이고, 아침은 현실과의 전쟁을 치른 뒤
맞이하는 정전의 평온함을 경험하게 한다.
낙엽이 그러하듯, 또한 어두운 밤이 그러하듯, 이제는 늦은 나이도 그러한가?
치열한 젊음의 전쟁을 치르고, 평온한 정전의 시간, 늘음을 맞이한다. 마치 날마다 밤을 지내고 만나는 아침처럼 만사가 평화롭고 감사하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영원한 휴가인 공식적인 은퇴식을 맞이해야 하는 노인 그룹에 정식 입적하게 된다. 그리고 늘 기다렸던 전철을 공짜로 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짜릿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65세를 맞이하는 첫 아침에, 집에서 가까운 전철역 까지 나가서 온양역까지 타고 가서, 온양역 앞에 있는 민속시장에 들러서 소머리 얼큰한 국밥으로 아침을 떼우고, 도로변에 있는 3000원 짜리 온천탕에 몸을 담그리라.
이마저도 경로 우대의 특권이 있나 당당한 마음으로 한 번 물어 보리라.
노인은 특권이다. 65살 까지 긴 인생의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한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도 나는 배가 더 고프다. 젊음이 함께 하는 세상에서는 이 배고픔은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
늙어서 경험하는 젊음과의 향연은 더더구나 짜릿하다.
젊음도 마찬가지로 늙음을 배고파하는 것이다. 늙음이 없는 젊음은 마치 아침이 없는 밤만 있는 전쟁터와 같다. 젊음도 늙음이 한데 어울릴 때에, 숨을 쉬게 하기에 장거리 경주를 견뎌 내게한다.
요즈음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숨쉴 조그마한 공간마저 마련 되지 못한 것이 이 사회의 딜레마다. 도심의 빌딩 숲 곳곳, 빈 공간에는 하릴 없이 서서 담배에 열중하는 젊은 영혼들의 불쌍한 군상만 눈에 띈다. 그곳에는 숨 쉬는 늙은이들의 참여가 없기에 숨 쉴 공간을 잃어 버린 젊은 박제만 즐비하게 놓여 있다.
늙음의 특권은 전철을 공짜로 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공해에 찌들은 젊은이들을 숨 쉬게 하고, 그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영혼의 놀이터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젊음과 늙음이 한데 어울리는 공간은 생명을 서로 소통하는 부활의 공간이 된다.
젊음과 늙음을 한데 융합해서 생명을 재생산 해야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이렇듯 젊음과 늙음이 한데 어울려 영육 간에 소통되는 건강한 사회를 우리는 교회라고 한다. 교회란 이 땅에 하나님의 성령이 지배하는 나라를 이른다. 우리는 젊음과 늙음이 모두, 세상의 탁한 공기가 아니라 성령의 신성한 공기를 먹고 마시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늘 나라’가 되는 것이다.
♡ 응재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