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자기를 ‘희생제물(犧牲祭物)’로 바치는 거룩한 행사다!
결혼(結婚)이란 무엇인가?
둘이 결합되어 하나가 되는 것을 기념하는 혼례라고나 할까?
각각이 떨어져 독립되어 살았던 인생을 포기하고, 이제 둘이 하나 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자기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확인하고 서로 다짐하는 행사다. 그게 바로 혼인서약(婚姻誓約)이다. 이 서약이 서로 합의 될 때에 비로소 결혼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둘이 하나 된 인생이 아니라, 또 다른 행태의 자기 인생을 살고자 하는 수많은 젊은 커플들은 결국 결혼의 진실한 의미를 상실하고, 결국은 자신의 구태의연한 과거 인생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둘이 하나 된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느냐에 따라서 빛을 발하게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둘이 하나 된 인생은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나’의 인생이 아니라, ‘우리’라는 완전히 새로운 공동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혼 생활이 얼마나 고되고, 험난한 인생길인가를 짐작하는 일은 그리 복잡한 계산이 필요치 않다. 사실 결혼이란, 어느 면에서는 ‘완전히 성숙한 두 인격이 서로 만나서 이루는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어린 남녀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장성한 남녀, 즉 도통(道通)한 두 인생 도사가 만나서 우주의 깊은 철학을 논하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며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결혼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동반자(同伴者)라고 한다.
동반자란 두 사람이 합해져서 서로가 도움이 되도록 해서, 서로 윈윈(Win-Win)의 상승작용이 폭발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합이 맞는 사람끼리의 결합이라고나 할까? 동반자란 합해서 합을 일으키는 관계를 말한다.
그렇다면 결혼해서 합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배척하고 미워하는 관계가 된다면, 이거야 말로 누가 결혼했다고 반기며 축하 해 줄 수 있겠는가? 그거야 말로, 한때 우스갯소리로 단어 알아맞히기 TV 가십으로 떠돌았던 금실 좋은 평생 동반자가 아니라 ‘평생 원수’가 아니겠는가?
결혼의 또 다른 얼굴인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관계로 평생을 원수끼리 한 배에서 동거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불교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의 관계란 전생(前生)에 못다 푼 한을 풀기 위해서 만나는 관계라고 해석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결혼 생활이란, 심히 극복하기 어려운 인생의 최대 과제 인 것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결혼이란 행복을 찾아 가는 파랑새의 꿈이 아니라, 결국 자기를 부인하는 치열한 결단의 의지로, 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깨어서 기도하는 낮아진 자세로 겸손하게 살면서, 현실이라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인 것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결혼이란 인생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자기를 닦고 수련하여 장성한 어른으로서의 길을 가기 위한 소중한 기회요, 또한 나아가야 할 평생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결혼의 철학이 이렇다고 이해를 한다면, 실제 결혼이 합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적용을 해야 하겠는가?
첫째, 자기를 부인하는 것 같이, 동반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자기를 부인한 관점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동반자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동반자란 단거리, 중장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을 달리는 동반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래 참고, 멀리 바라보며, 죽도록 인내하는 자세를 가져라. 장수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마라톤에 임하는 굳은 심지를 가져야 하고, 동시에 상대를 백년지객을 섬기는 신실한 자세로 대하기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셋째, 인간은 육과 혼과 영을 가진 동물이다. 이성과 감성과 영성을 동시에 지닌 지성적 영장인 관계로, 이를 모두 만족 시킬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둘이 함께 하는 공동의 시간을 함께 할애하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커피 타임을 갖는다든가, 저녁에 함께 포도주를 반주로 한다든가, 자식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녁 이후 간단한 산보를 한다든가, 테니스를 주말에 즐긴다든가,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두 성인의 스토리가 서로 교환되는 소통의 장을 준비해야 한다.
영적인 소통을 위한 노력도 물론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에 함께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고, 진리에 대한 본질적인 깨달음의 갈급함이 있어야 한다.
넷째, 결혼의 본질은 결국 진리를 탐구하는 긴 여행길이다. 이는 구도자(求道者)의 순례 길에 해당하는 천로역정(天路歷程)의 길이다. 진리의 본질은 또한 사랑으로 짜여 있다. 부부의 인연(因緣)은 바로 이 사랑의 끈으로 연연이 이어져 있다.
우스갯소리로 사랑을 정의한 내용 중에, 일 년간의 사랑은 ‘설렘’ 가운데 하고, 삼년 후의 사랑은 ‘이해’로 양해하고, 십년 뒤부터의 사랑은 ‘믿음’을 가지고 임하고, 평생의 사랑은 ‘희생’으로 한다고 했다. 결국 사랑은 이렇듯, 시간의 함수라고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는 사랑의 본질은 바로 ‘헌신과 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결혼은 자기를 ‘희생제물(犧牲祭物)’로 바치는 거룩한 행사다. 결혼은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어야 하고, 결국은 예수가 오셔서 보여준 십자가 희생의 길을 따르는 것이리라. 십자가 희생이 완전한 결혼의 대단원이다.
♡응재 곽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