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길? 운명의 길!
인생을 흔히 나그네의 길에 비유한다.
이 나그네 글이라는 의미에는 아마도 간단하지 않는 인생의 방황하는 길이든지, 아니면 어려운 고난의 길임을 은유적으로 둘러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말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 오는 이유가 우리 모두가 방황하고 아픈 나그네 길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 길이 나그네 길이라서, 아픈 청춘의 길도 있고, 천 번이나 흔들리는 길이 있다손 치더라도, 언젠가는 성숙한 어른의 길에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을 근거로해서 우리는 그 아픔과 흔들림으로 인한 어지러움을 극복하고 굳건히 인생의 길을 버티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은 바로 희망의 길이요, 우리 모두의 소망된 길이다.
성경에 이 어른의 길에 대한 좋은 가르침이 있다.
“비록 우리가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우리를 지으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 아버님이시다”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최상의 계획을 세우고, 그 길을 세우고 지키고 이루기 위해서 노력한다 할지라도, 노력하면 할 수록, 결국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들어 서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찾아 가는 길을 벗어날 때에, 그 가는 길을 돌려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바른 길로 되돌려 세우기 위해서, 청춘을 아프게 하고, 흔들어서 제 자리를 찾게 하신다는 의미가 된다. 아프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청춘은 결코 성숙한 어른의 길이 아닌, 철부지 어린 아이의 길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로서, 우리 인생은 우리 스스로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의해 우리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된다.
인생의 길을 이야기 할 때에, 빠지지 않을 것이 공자의 논어 위정편에 나온 말씀이다. 인생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지학), 서른에 학문의 뜻을 세우고(이립), 마흔에 미혹되어 흔들리지 않고(불혹), 쉰에는 비로소 하늘의 뜻을 알고(지천명), 예순에는 이에 순종하여 실천하여 깨닫게 되고(이순), 일흔에는 뜻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종순)고 했다.
공자의 가르침은 처음에는 학문으로 시작해서 인생의 나를 완성하고, 하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가운데,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인생 전반의 나아가야할 높은 경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평생을 배움에 두는 이유가 바로 인생 길이란, 자기와 우주의 하늘의 뜻을 하나로 일치 시키는 유교의 ‘천인합일’의 덕을 쌓는 과정이기 때문이고, 이를 우리는 인생 길, 즉 도를 닦는다고 한다. 이제 사십이면, 세상에는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고 미혹되지 않는 불혹의 나이고, 이제 하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몸과 마음의 자세를 거룩한 하늘로 향해 옷 매무새를 바르게 하고 단정히 해야할 때이다.
불혹의 나이란, 학문으로 자기 인생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세워 온 세상 모든 바벨탑을 깨뜨리고, 그 터 위에 새로이 하늘의 거룩한 뜻을 새우기 위한 터를 마련하는 것이고, 이를 성경에는 거듭나는 것이라 했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 했다.
쉰이 되면,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나이다. 서나 앉으나, 하늘의 뜻에만 집중하는, 도가 아니고 덕이 아니면, 돌아 보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정진해야 하는 때이다. 불혹과 지천명은 결국은 이순을 거쳐서 종순에 다다르기 위한 하늘 문의 입문에 해당하는 과정에 서 있는 나이가 된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 함도, 바로 공자가 가르치는 천인합일의 향한 천로역정의 험난한 길을 가야하는 우리 인생의 운명을 간접적으로 은유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나그네 길이란, 하늘이 결정해 놓은 운명에 따라 순응해야 해야하는 우리들이 나아갈 진리의 길이라 하겠다.
누가 “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 왔다.
필자는 이에 이렇게 대답했다.
“건강이 따로 있는가? 지금 살아 있으면 건강이제!”
그렇다. 무엇이 천인 합일이고 진리의 길인가?
바로 지금 살아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고, 지금 나의 선택으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늘이 나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결정한다면, 내가 하늘이고 하늘이 나일진데, 무엇이 우리를 갈라 놓겠는가? 아무리 가혹한 현실인들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없다. 진실로 운명이 우리를 결정하고 하나님과 내가 하나이라면, 무엇이 우리를 그리도 급하게 달려 가게 할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우리를 급하게 달리게 할 일도 매진하게 할 일도 하나도 없다.
지금이라는 선물을 풍성히 누리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오직 지금 이 시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우주의 모든 것을 누리고 나누면서 사는 것이리라. 지금이라도 우리의 이웃에 있는, 육의 한계 안에서 껴 안을 수 있는 모든 생명을 포응해 주라. 그리고 우리의 영이 닿을 수 있는 곳 안에서 하나님을 안아 주고 사랑하라.
그것이 진리요, 천인합일의 실천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