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출?
우리가 가지는 익숙한 것의 틀이란 무엇인가? 익숙한 것의 틀이란 본래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감지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리고 육감을 통해서 느끼는 대로 종합하여 판단하고,
더 읽어보기우리가 가지는 익숙한 것의 틀이란 무엇인가? 익숙한 것의 틀이란 본래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감지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리고 육감을 통해서 느끼는 대로 종합하여 판단하고,
더 읽어보기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율법으로만 가능하다. 율법이 먼저 나의 익숙하게 길들어진 세상 탐심을 보게하고 이 탐심을 정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에 비추인 율법은 죄이지만,
더 읽어보기십자가 형상의 수직은 하나님이 친히, 신의 지위인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 아래로 내려오신 것을 기념하고, 수평은 공평하게 신과 사람이 친구가 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십자가의 의미는 신이
더 읽어보기세상 종교는 어느 것 하나, 이단이 아닌 것이 없다. 특히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모든 종교야 말로 세상 종교의 특징을 가장 잘
더 읽어보기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 예수가 한 뿌리이듯이, 선악과와 생명과 또한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인 은혜도 하나이다. 이는
더 읽어보기유대인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초막절을 정해 놓고, 천막생활을 하면서 선조들이 생활한 광야생활을 기념하고, 더불어 인생의 덧없음을 경험하면서 마음을 굳건히 다진다고 한다.
더 읽어보기” I’m talking to the moon “ -Liquette-Gorbach- “예수님은 사랑이 끝난 곳에서 ‘사랑’이 되신 분이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이 되시고
더 읽어보기하나님의 영원함과 전지전능하심을 그 누가 예측을 하고, 하나님의 의와 선을 감히 누가 안다고 할 수 있으리오. 그것을 짐작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짝이 되는 세상의 요소를 살펴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영원함을 예표하기 위해서 세상에는 모든 것이 잠정적이며 한시적인 것이고, 전지전능은 약하고 무능한 우리를 되돌아 보게 하고, 의에 대한 것은 죄를 통해서 짐작하는 것이고, 선에 대해서는 우리들의 악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비록 하늘에 닿을 수 없고, 하나님을 직접 보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우리들의 무능함과 죄와 악을 통해서 그분을 깨달을 수 있도록 조치하신 것 아닌가? 성경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약을 통해서 신약의 비밀을 비추어 깨닫게 하신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은혜와 사랑을 알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다.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선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먼저 하늘의 것과 세상 것들의 짝인 죄와 악의 의미를 철저하게 깨닫기만 한다면, 하늘의 비밀인 의와 선을 이해하는 것으로 간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짝을 통한 절차를 밟지 않는 한, 하늘의 비밀은 영원히 깨달을 수 없다. 우리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을 눈으로, 말씀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원리와 같다. “너희가 나를 본즉 하나님을 보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세상과 짝지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과 세상 만물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고, 하늘의 진리의 속성을 나타낸다는 깊은 의미만 깨닫고, 세상 이치를 세울 수 만 있다면, 여인의 해산의 고통을 주는 고해인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빛으로 소금으로 거룩한 진리 속에서 생활 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죄와 악을 하나님의 의와 선을 깨닫게 하는 수단인 것을 깨닫는 순간에 우리는 죄와 악의 구속과는 무관한 존재가 될 것이고, 죄와 악에서 지워지는 용서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고 동에 의와 선의 원천인 진리와도 접하는 결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를 두고 율법이 완성된 것이고, 언약의 기둥인 십자가가 완성된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세상과 하늘이 구별되는 두 마음을 가진 탐욕의 존재에서 세상과 하늘이 하나로 연합된 진리의 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이 한 마음을 가진 자를 믿음의 자손이라고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지니게 되고, 하나된 깨달음, 즉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해야 하는 사명자로
더 읽어보기<요한복음 12:24~25> 의 해석은 매우 난해하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남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보존하리라.” 어찌, 한 알의 밀이 죽거나 사랑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고, 이 세상 생명이 죽거나 미워하면 영원히 보존을 받을까? 이 내용에서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이 내용을 세상적으로 접근해서, 단순히 헌신적인 생명의 희생의 내용으로 감상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세상적인 것과 하늘 적인 것의 이중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혹자는 이를 문자적인 것과 레마적인 내용으로 성경내용을 분류를 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후자의 경우, 즉 하늘의 비밀을 전자의 경우인 세상을 통해서 깨닫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한 알의 밀이라고 했을 때에, 단단한 밀알의 껍데기 안에 생명의 진리를 담고 있다. 이때 밀알이 땅에 떨어져 깨어져 죽지 않으면, 결코 밀알 안에 담은 진리의 뿌리가
더 읽어보기무엇이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음을 증명해 주는가? 행위로 나타낼 것인가? 아니면 감정의 느낌으로 확정할 수 있을까? 아무리 우리가 하늘의 비밀인 생명의 깨우침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진리 안에 있음을 주장한다고 해도, 우리가 스스로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감히 진리와 함께 한다고 확정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고, 분명한 해답이라고 제시하기에는 인간의 연약함을 느끼는 만큼이나 질문이 난해 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진리를 따르는 수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늘 당황해 하면서 진리가 아닌, 유사 진리인 자기 긍정의 결과에 쉽게 빠져 들게 된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로 진리와 짝하고 있다고 감히 증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서 하늘과 짝하는 진리로 연합해서 깨달음을 가진다는 것이다. 소위 세상을 통해서 마음 안에 있는 진리의 문을 열고 진리의 눈으로 보고 깨닫는 능력이 발휘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창조된 세상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함께하는 영화를 누린다는 의미가 된다. 이 누리는 영화란 세상 지식이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고정된 틀에서 스스로 해방된 사람이요, 이로서 세상에서 자유하는 진리의 영을 가진 사람이다. 십자가의 언약의 기둥에서 구약을 완성한 사람이요, 이로써 신약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고 누리며 사는 것이다. 진리 안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창세 전에 우리를 정하시어 부르시고,의롭게 하시고, 의롭다 부름 받은 이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아바 아버지의 섭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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