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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베푼다는 것

잘 배푸는 것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한다. 많이 배푸는 것이 아니라 잘 배푸는 것에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잘 배푸는 것인가? 잘 베푼다는 의미에는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다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 같다. 베푸는 것에도 중용의 도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중용이란 적절하게 대처해서 행한다는 것이고, 그 적절함에는 절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 같다. 중용은 절제에서 행해지고, 절제는 자신을 비우는 것, 즉 참 자아를 아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는 사항이 아닌가 여겨진다.

베품에 있어서도 배품의 주체인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일았을 때 진실로 베품이 이루어지는 근간이 된다.

我且非我 何憂子財 (아차비아 하우자재)

“내가 또한 내가 아닌데, 어찌하여 거짓된 자신의 본질 즉 참된 자신과 관계없는 헛된 일들을 행하고자 하느냐?라는 뜻이다.

“자신을 닦고 돌아보고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을 버리는것이 수행이다. 부족한 것을 깨닫고 모자라는 것을 채우고 넘치는 것을 비우는 것이 수행이다. 내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내것이라고 착각하며 살다가 모두를 잃고서야 내 자신도 내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모두 누군가를 위해서 있는 것인데 가짜의 자기가 요구하는 이기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모두가 나를 위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산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마저도 내 것이 아님을 깨닷고 그들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참된 자기를 찾기 위한 걱정과 노력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펌글-

이런 의미에서 진실로 배푼다는 중용의 의미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먼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참 자아를 찾으면 배품도 중용도 절제도 만사가 모두 하나 되어 물흐르듯 스스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배품으로의 위대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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