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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내용을 한발 더 나아가 적용해 보면, 멈춘다는 것은 정지한다는 의미가 아닌, 일상의 익숙하고 편한 틀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해석해 봅니다. 바로, 일탈의 의미이지요.

그리고 보인다는 의미는 오감을 뛰어넘어 육감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오감의 의미에서는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새소리와 초목의 교감하는 소리를 듣고 꽃과 대지의 향기를 맡으며, 계절의 기운을 느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육감의 경지에서는 깊은 명상과 사색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육감의 경지에서는 영적 상태에서 깨달음의 단 열매를 체험하게 됩니다. 인간의 공간에서 신의 공간으로의 전이 현상을 경험하는 겁니다. 사차원 공간에서 신성한 오차원의 공간을 만나는 겁니다. 그 신비한 공기를 성령의 공기라  합니다. 사차원공간에서 숨쉬는 산소에 해당하는 신선한 공기입니다. 신의 영인 성령을 먹고 마시고 취하면, 평강의 상태에 다다르고, 신성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셈이지요.

비록, 몸은 사차원에 머물지만, 존재감은 오차원 세계의 신의 영역에 있는 신비감으로 싸이게 됩니다. 신과 함께 숨쉬며 머무는 영광을 누린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멈추면, 비로소 깨닫게 되는 셈입니다.

죽으면 비로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면 가장 높은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을 보게 되듯이, 삶의 가장 낮은 단계인 죽음을 기준으로 삶에 잣대를 들이대면, 삶의 모든 현상을 바라보게 하는 깨달음이 옵니다. 그것이 분별력이요, 또한 통으로 하나로 보는 능력인 통찰력이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싫으나 좋으나, 고난의 세상에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그 세상을 극복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 되기 위함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능히, 주인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살아야겠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는 자만이,
세상과 우주의 주인이 누리는 절대 권위적 존재감을 누리게 됩니다.
절대 권위의 신적 존재감입니다.

삶의 기준이 아니라, 죽음의 기준, 상대적 기준이 아니라, 절대적 기준, 세상 기준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 진리의 기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의 기준을 삼아서 살아가는 인생, 평강의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안응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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