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명작을 쓸까?
“글은 누가 쓰는 것인가?
요즘 같은 바쁘고 복잡한 시절, 삶에 찌들든가 삶에 주눅이 들어 살아야 하는 시절,
과연 누가 걸작의 작품을 쓸 수 있을까? 부유하고 여유 있는 작가들의 군일까?
아니면 생활에 찌든 배고픈 사람들 군에서 명작품이 나올까?”
최정상에서 밑바닥의 지하실을 오리내린 사람은 어쩔까요? 글타령을 듣자하니,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결코 삶에 찌들었든가 타협하지 않은 과거 아날로그적 시절이 그립습니다.
“나는 별로 좋은 작가가 아니다 다만 남보다 자주 고쳐 쓸 뿐이다”
-미케너- -페친님인용-
“좋은 작가의 의미가 무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당연히 독자들이 느끼는 감동의 무게로 판단되어지는 것이겠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작가 스스로가 느끼는 판단 기준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작가 중에 스스로 좋은 작가라 여기는 사람이 몇 사람이 있겠습니까? 좋은 작가 나쁜 작가 이전에 어떤 작가도 스스로 부족하지 않다고 여기는 만족하거나 교만한 작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갈증하고 목말라하는가? 하는 작가의 경륜과 인격적인 차원과 관점에서 좋은 작가라는 판단과 칭호를 내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져봅니다.
♡도천 곽계달♡
ㅡㅡㅡㅡㅡ
“어제 늦은 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다가 생각난 것이 있었다. 홍상수 감독의 데뷰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각색했던 여러 명 중, 시나리오 작가 겸 강사가 내게 했던 말이 있다. 내가 영화판에서 놀아보겠다고 충무로를 싸돌아다닐 때였다.
“넌 배고픈 적이 없어서 제대로 된 글 쓰기 어려울 거야.” 나는 누군가가 이따위 말을 하면 대꾸 안 한다.
일전에도 말했듯 나는 논쟁을 아주 싫어한다.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소모전은 처음부터 차단해 버린다.
검증되지 못한 논리를 마치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가만히 입 다물고 노가리나 뜯어먹기다. 배고픈 적이 없었던 사람은 제대로 된 글을 못 쓴다? 그럼 배가 고파본 사람만이 글을 제대로 쓴다는 건가?
내 술을 여러 번 얻어마신 배고픈 사람들은 말이 참 많더라. 구소은, 그 술냄새 나는 비릿한 말들 들어 주느라 고생 참 많았다. 그런데 배고팠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바닥에서 떳다는 사람, 못 들어봤다.
소설가가 되고 보니 배고픈 사람도 배부른 사람도 좋은 글 쓰는 거 별로 못 봤다. 배고픈 사람의 글은 훈련된 글쓰기로 문장력은 괜찮은 편이나, 살찌지 못한 상상력은 얄팍하더라.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글 잔치가 되기 일쑤다. 배고프다고 징징대며 동정심 자극하여 책팔이하는 거, 한두 번이면 밑바닥 드러난다.
반대로 배부른 사람은 글 잘 안 쓴다.
배부른데 뭐 하러 사서 고생하겠나. 베셀 몇 번 했던 작가들, 갈수록 글에 기름만 차고 내용은 싱거워진다.
힘든 소설 쓰느니 이미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소리만 잔소리처럼 늘어놓은 에세이집을 낸다. 그러면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소리를 팬들은 긁어모은다. 이런 걸 보고 있자니 답이 딱 나오네. 배고파도 안 되고 배 불러도 안 된다. 배고프면 구차해지기 쉽고, 배부르면 거만해지기 쉽다.
어떤 일은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
여기서 적당히라는 건 대강대강이나 대충과 거리가 멀다. 정도가 가장 알맞다는 의미다. 아프고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나는 웃고 강한 척을 한다. 이것도 터무니없는 짓 같다. 배부르고 교만해질 것 같으면 차라리 잠수한다. 허튼 소리 백날 해봐야 꼴만 우습지 않겠나.
그러면서 ‘적당히’를 찾는다. 지금은 잠수할 때다!” -구소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