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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즐거움에 몰입하는 자, 그대는 누군가?

‘지속 가능한 쾌락은 철학적 사유와 명상밖에 없다.“

요즘 와서 필자가 가지는 삶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공감합니다.

정신적 쾌락을 포함해서 특히 육체적 감감도 함께 추구하는
본인의 삶의 태도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에피쿠로스적 삶이라 말할 수 있겠네요?

점차로 죽어가는 육적 욕망과 쾌락조차도 물 흐르듯 흐르게 하여
살아 있는 마지막까지는 적어도 육체에 가지는 부채는 상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나에게 주어진 삶 동안에는 적어도 육과 영혼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도록
소명 받은 자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하겠기에 운명적인 삶조차 물흐른듯
자연스럽게 하고자 하는 게 나이 들어 편히 가지는 상념입니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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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쾌락은 철학적 사유와 명상밖에 없다.“

독자님 중에 이 말에 동의하는 분이 있다면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취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성보다는 감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떠한 신분이나 직책에 구애받지 않고 에피쿠로스의 정원에 초대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 나는 지금도 머릿속에 조르바의 말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말한다. <내 법에 의하면, 나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소, 죽음도 두렵지 않소. 내가 아무것도 아니듯 죽음 또한 아무것도 아니니까>(카잔자키스, 지중해 기행, ) 그렇다면 조르바는 어떠한 학파의 이론에 가깝게 살았을까? 어디서 본 듯한 말 같지 않은가?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도 아니요’ 그리고 에피쿠루스는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왔을 땐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에피쿠루스 , 쾌락)

사람들이 말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이론에 좀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운 좋게 출판 사업자를 만나면 걸맞은 제목도 정해지겠지만, 수년 넘게 쌓아 놓은 원고에 붙은 파일명도 ’ 별 달 비 구름 바람.‘ 아니면 ’ 떠나거나 머물거나,‘이거나 혹은 ’ 일상의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니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으며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두라‘ 하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운명적인 삶을 따르거나 이성을 깨워 유혹과 욕망을 멀리 하고자 애쓸 때는 철저하게 스토아학파 같기도 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의 철학적 경계가 모호하다. 그렇게 보면 철학 이론이라는 게 시야를 등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천문관찰용 굴절망원경에 삽입한 백금 줄과 같다고 표현한 아나톨 프랑스의 견해에 공감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때그때 ‘이성’ 뿐 아니라 ‘감각’이 동시에 철학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에피쿠루스의 정원으로 들어간다. 물론 현실 같은 상상이며 누구나 누릴 있는 상상 같은 현실이다. 나는 햇살이 내리는 포도 넝쿨 아래 예쁘게 잘 차려진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한 조각의 치즈와 한 잔의 커피, 그리고 빵 한 조각에 행복감을 느끼며 행복다운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마음 안에 정원을 가꾼다. 그러자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평정 상태에 이른다. 마음 안에 꽃이 핀다. 꽃의 이름은‘#아타락시아(ataraxia)다.”

-남기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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