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는 없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의지’를 주었기에 어쩌면 ‘섭리’보다는 인간 스스로가 현명한 처사로 살아가길 기대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서희경님 –
예수와 관련 된 사람들에게는 이미 창세 전에 계획 되고 예정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이 다가 오기 전에 기도하시면서 “주께서 내게 맡긴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다 구원했다” 하신 것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신 것이지요.
잠시 동안은, 아주 먼지와도 같은 미미한 찰라에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자유 의지로 일이 되어지는 것 같지만,
영원의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뜻 가운데서 간섭하시고 주님 뜻대로 완성 하시는 것이지요.
원래,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주사, 생명은 있지만 피조물인 인간에게 선악의 판단을 하게 하는 자유의지는 원래 없었습니다.
선악과를 범한 사람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고, 하나님을 떠난 뒤, 성을 쌓고,
인류 문화와 역사를 스스로 쌓아가는 과정에서 생성 된 인문학적인 단어가
바로 피조물인 인간이 자유의지라는 선택의 주체로 여겨지게 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적절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섭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모두 부처 손 안에 든 손오공과 같은 형국이 바로 섭리가 나타내는 바른 의미 입니다.
섭리는 시간의 함수가 아니지만, 자유의지는 언젠가는 소멸 되는 시간함수로서 결국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의 함수를 고려한다면, 시저는 시제의 방식으로,
세상 지혜와 방법과 노력으로 소위 세상의 축복을 소위 자유의지의 결과로 스스로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축복은 하늘의 영광에 비하면, 그야말로 비교도 되지 않는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 허무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가치는 한낱 바람에 날아가는 겨 이거나 모아서 불태워질 가라지에 지나지 않는 거지요.
그렇다고 세상 축복을 경시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세상은 세상대로 열심히 땀흘려 추수도 하고, 그 손이 수고한 대로 복을 받지만,
절대로 하늘의 거룩함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절대로 하늘의 거룩함이 세상의 오해로 인해서 오염이 되는 심각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편 1: 5-6>
피조물인 사람에게는 자유의지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토기에게도 자유의지는 없습니다.
다만 토기쟁이이신 창조주에게 드리는 찬양과 순종하는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예수 성품인 ‘선한 자유의지’ 외에는 모두가 불순종이요, 사망일 뿐입니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