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은해사 움부암의 소시적 추억, 그리고 흥해
경북 영천 은해사 운부암, 앞 마당에 붉은 꽃을 피웠던 펑퍼진 나무가 생각이 난다.
그해에는 유난히도 잠자리떼가 무리를 지어 절 중앙 마당을 배회했고, 절 앞마당에 있는 낮게 드리워진 백일홍 가지에도 매미가 많이 붙어 있어서 더욱 한여름의 추억이 새롭다.
초등학교 5학년, 심장이 약했던 필자는 여름방학을 맞아서 누님과 함께 찾아 갔던 암자다. ‘구름이 떠 있는 곳’이라는 이름으로 개울을 앞에 두고 있는 아름다운 암자였다.
그곳에 머물면서 여름 동안 일어 났던 여러 에피소드는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서 두고 두고 엔돌핀을 생성하고 있다.
암자에서 고시 공부하고 있던 형들과 함께 길도 없는 산을 무작정 넘어서 팔공산 동화사까지 넘어가는 모험에 준비도 없이 무모하게 동참하게 된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상도 못 할 일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5학년 짜리 꼬맹이를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여름 반바지와 짧은 티만 입혀서 길도 없는 미지의 산행을 떠나 보냈으니, 정말 귀신도 곡 해야할 일이었다.
당일치기로 새벽에 절을 떠나서 동화사 약물을 받아, 다시 돌아 올 무렵에는 이미 해가 져서 주변이 온통 깜깜하게 되었다.
전등도 없이 어스럼한 달빛 만으로 눈 대중으로 산을 내려 오다가, 그림자를 바위로 잘못 알고 발을 디뎌서 몇 번이나 구르기도 하고, 또 가지에 스쳐서 발에 생채기가 나자, 형들이 젓 가가락으로 셔츠의 구멍을 뚫어서 반바지에 묶어 기워준 것도 어슴프레나마 아직 기억이 있다.
생사를 몇 번 헤멘 뒤에 무사히 절 뒷 편 산에 올라 섰을 때의 그 감개무량함이란 더 이상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절에 무사히 내려 와 보니, 절 안은 오통 텅 비어서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빈절이 되어 있었다. 모두들 우리들이 실종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리들이 내려 올 법한 곳으로 모두가 등불을 들고 찾아 나선 것 아니었겠는가.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난 그때 그 사람들, 지금은 한국의 법조계에 명성을 날리시고 은퇴해서 여생을 잘 사시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저 작년에는 가르치는 제자들과 함께 은혜사를 거쳐서 그곳으로 야유회를 다녀왔다. 필자가 꼭 실천하고 싶은 오랜동안의 버킷 리스트에 있었기에 그래서 인지 너무나도 황홀한 방문이기도 했다.
산 중턱에는 아름다운 저수지와 개천 옆으로 절벽이 나 있어서 산에서 흐르는 물이 매우 상쾌하고 아름다웠다. 절 주변도 많이 변해서 알아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허기는 당시 초등학교 꼬맹이가 본 절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저 그런 평범한 규모의 절이었다.
당시에는 운부암이 남한에서 알아 주는 승방으로 여러해 동안 고매하신 고승들이 머물면서 공부하는 곳이라 했다.
그곳 주지 스님과 몇 마디 정담을 나눈 뒤에 절을 떠났지만, 그때의 그 아름다웠던 회포는 여전히 풀 길이 없이 빈 마음으로 절을 떠나야 했다.
당연히 기대했던 암자 앞마당에 있었던 추억의 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빈 주차 공간만 덩거르니 남아서 나를 쓸쓸히 보내 주었다.
나중에 신문 지면을 통해 알았지만, 성철스님이 이곳 운부암에서 기거한 것으로 소개되는 기사를 만나서 더욱 운부암이 필자에게 주는 의미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