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길!
누가 ‘다문화 가족’이고, ‘단문화 가족’인가?
우리 모두가 세계인이 아닌가?
이제 너와 나의 갇힌 틀을 깨고 과감히 시선을 나에게서 이웃으로 돌려야 할 때다.
그것이 미개와 미천한 존재에서 선진 존재로 점핑해 나아갈 때다.
산을 깎아내고 골짜기를 메우고 광야와 황야의 사막에 생명의 길을 내는
상하의 관계가 아닌 수평의 관계로 나아가야 할 때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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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다문화!)
2005년이었나. 한국에서 일할 때였다.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갔다가 연구원직을 맡게 되어 안느의 비자를 정리할 틈이 없었다. 한 살 정도였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 프랑스 방문을 하러 공항에 들렀더니 아이가 3개월 이상 체류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었다. 출입국 사무소라는 곳에 가서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절차대로 벌금을 물었고 친절한 출입국 사무소 직원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며 해결책을 주었다. 그러면서 “아이 머리가 곱슬곱슬 정말 예쁘네요. 아빠가 프랑스인이라 그런가요 ? 프랑스에 사시면 참 좋겠어요 ?” 등등. 그래서 내심 출입국 사무소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사라졌다. 서류 정리를 위해 기다리는 동안 아이에겐 과자를 쥐어주시고 나에겐 차까지 대접해주셨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여유롭게 앉아 기다리는데, “아니, 이것들이… 저쪽으로 가란 말이야 ! 빨리 ! 빨리 ! 도대체 몇 번째야 ! ” 깜짝 놀라 보니 아까 그렇게도 친절하게 안느와 나에게 설명을 해주셨던 직원이다. 조선족인지 중국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으로 보이는 남자, 여자, 그리고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있었나. 아이에게도 마구 폭언을 하며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다. 아…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떨리는 그 장면. 무슨 생각을 했던가.
프랑스인이라…한국계 중국동포라… 한국인이라… 유럽식민통치사상, 백인우월주의 프레임에 세계가 갇혀 결국은 유색인끼리 혹은 동포끼리 살풍경한 차별주의를 재생산하고 있구나. 여기에 또 자본 노동의 더러운 시스템까지 한 몫해서 결국은 유색인종-노동자계급의 이중 패러다임의 늪에 빠지는구나. 내 앞에 서있는 어떤 인간이 나와 동등한 인간이고 모든 인간의 권리를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에피소드는 차고도 넘친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노르웨이에서 미국에서… 프랑스 경시청 이민국에서 비자 받으려고 줄을 한 번이라도 서 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다문화란 네이밍도 싫다. 차별을 규정화한다. 그럼 ‘순수’ 한국인 가정은 다문화 가정이 아닌가 ? 처음 한국 갔을 때 도대체 이 말의 개념이 오지 않아서 무척 헤맸던 적이 있다. 다문화라니! 혼혈보다 더 차별적인 말이란 생각이었다. 이 다문화 프레임 때문에 이들 또한 똑같은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더 힘든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얼마 전, ‘호기심 사무실'(Cabinet de Curiosité)라고 하는 17세기 유럽 귀족과 왕족들의 취미거리였던 진기명기품을 집안에 전시해두던 전통을 셍트-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맞딱뜨렸다. 당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식민 침략의 유품들을 전시해 놓는 것이다. 그 전시품들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했다. 내 안에 차별적 시선을 갖는 것, 내 눈 앞에 함께 한 사람이 나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면 그건 내가 스스로 저 박제된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고. 깨어있지 못하고, 살아있지 못하고, 누군가 박제화해놓은 시선 속에서 과감히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해야한다고.
‘백인 다문화 가정은 예능에 나오고, 동남아 다문화 가정은 다큐에 나온다.’ 기사를 읽으면서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 사대주의, 불평등에 대해서 생각했다. 예능 프로가 한국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 이 기사를 읽다가 여러가지 생각들이 밀려온다. 그래도 오늘 아침 가슴ㅇl 뻥 뚫리는 글 하나를 읽고 신나게 하루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