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것은 생명의 본색!
부부가 싸우는 한에는 결코 이혼이 없다고 했다. 이는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에 있는 삶에는 결코 죽음이 없는 것과 같다.
싸운다는 사실은 아직 화해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이고, 부부로 살아 있다는 실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도 이와 같다.
인생은 무상이라고 했다. 여기서 인생은 생명이라 하겠고, 무상의 의미는 변화한다는 뜻이지만,
사실 생명을 제대로 표현하는 의미를 단지 “변한다”는 의미 보다는 ‘치열하게 부딪치고 도전하는 가운데서 변하는 것’으로 바꿔야할 것이다.
변화는 쉬운 것이 아니다. 일상을 거슬러 극복하는 것이 변화이기 때문이다. 마치 연어가 회귀하는 가운데 물살의 흐름을 거슬러 쳐 올라가고, 독수리가 그 날개 짓을 통해서 중력을 차고 부양 하듯이, 죽음을 피하거나 모르는 채 방관하면서 수동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치열하게 싸워서 이겨, 살아서 환희의 찬가를 불러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싸운다는 것은 승리해서 얻을 그 위대한 성취감에 도취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울도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I have fought a good fight, I have finished my course, I have kept the faith: Henceforth there is laid up for me a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shall give me at that day: and not to me only, but unto all them also that love his appearing).” <디모데후서 4:7-8>
믿음을 지키는 일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이에 바울은 목숨을 걸고 일생을 바쳐서 선한 싸움을 했노라(I have fought a good fight)고 고백을 했다.
생명을 믿음으로 지키는 결과로 얻는 성취는 바로 의의 면류관(a crown of righteousness)이라 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생명에 대한 구원을 얻기 위한 피흘리는 싸움을 통해 믿음을 지켜야 하고,
이에 합당한 성취는 천국 백성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당신은 의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수행한 선한 백성인가, 다시 한번 물어 봐야 할 것이다.
♡ 응재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