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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마인드에 대한 허상과 실상!

인간이 잘 살아 가는 원동력으로서 긍정의 마인드는 매우 요긴합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항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이를 부인하고자 하는 데에는, 자칫 이 긍정의 마인드로 해서 인간이 가야할 궁극적인 의미를 희석시킬까하는 우려에서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긍정 대신에 부정의 마인드를 가지고, 자살을 하라는 그런 취지도 아닐 것은 잘 아실 겁니다. 여기에서의 취지는 긍정과 부정의 대립된 선과 악의 관계가 아니라, 한 차원을 더 나아가서, 진리에 입각한 의미 부여를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 쉽게 접근해 보면, 진리란 진정한 생명, 영원한 생명, 즉 잠시 왔다 흙으로 되돌아 갈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후패하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신 영생을 얻기 위한 의미에 대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또한 구원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육신도 좋고 영도 서로 좋은, 윈윈 게임을 구상할 수도 있겠지요. 누구나 세상도 좋고, 하늘도 좋은 유토피아적 세상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들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긍정적 추구 대상이겠지만, 불행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윈윈 게임하고자 하는 그런 모습을 결코 용인하시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식에게 무한정 칭찬 대신에 매서운 회초리를 드는 부모가 되어야한다는 가르침이 어느정도 이에 대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의 마인드가 인간에게는 매우 필요한 사항이지만, 이 세상에 적응하여 잘 사는 것에 초점이 되어 하늘의 의미, 즉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과소평가하거나, 퇴색시키는 결과가 초래 될 것을 미리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의 마인드나, 종교라는 형식을 빌어서 세상에서 위로를 필요로 하고 받고자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다시 세상이라는 올무에 붙잡히게 되는 것이 세상 원리입니다. 잠시 얻는 위로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세상 위로는 다시 금새 우리를 목마르게 합니다.

“내가 주는 생수는 다른 물과 달라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라고 예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이르셨지요.

수가성 여인은 평생을 세상 위로를 받기 위해서 다섯 남자와 살았고, 또한 지금도 다른 남자와 살고 있지만, 여지껏 세상 위로를 얻지 못한 채, 그 더운 대낮에 이웃의 눈치를 피해서 물을 길러 우물가에 나온 겁니다. 

예상컨데, 원래 수가성 여인은 당시 상황을 봐서 인간적으로는 매우 긍정적 사고를 가진 여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남자, 저 남자로 옮겨 가면서 위로를 받고자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위로의 바람의 결과는 여전히 그녀를 목마르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 이웃의 눈을 피하면서 죄인의 마인드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세상에는 원래 긍정이 없습니다. 긍정을 이야기하고 주장하겠다면, 이는 원래의 세상 정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오직 진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인드’가 진정한 위로의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기 위해서는 잠시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겠지요.

♡ 응재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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