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society

민주주의는 해적질이 아니다!

필리버스터, 해적질? 

여기에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 하는 좋은 내용이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동안 무지해서 혼란을 겪었을 많은 선한 국민들과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무지한 현 정치인들에게 널리 퍼뜨려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란, 표대결로 이룬 다수결의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막장토론 끝에 다다르는 만장일치의 보편적 승리가 되어야 함을 논하고 있습니다.

매우 감동 깊은 내용입니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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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가 왜 합법적인지를 말하는데 있어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은 유치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리라면 다수의 독주라는 개념이 어떻게 성립하겠나.

정치철학을 이해못하니 ‘해적질’이라는 뜻의 필리버스터가 왜 허용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헌법과 의회주의에 이정표를 세운 칼 슈미트의 의회론에서 잘 설명된다.

여러차례 이야기하지만, 민주주의는 ‘동질적인 사람들이 이질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정치질서란 적과 동지를 구별해서 동지들로 구성되는 만장일치로 성립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로 결단된 체제다. 따라서 이 질서는 만장일치여야 한다.

이때 의회는 ‘공론의 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본질이지, 표대결을 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따라서 의회는 ‘합의주의’가 원칙이다.

의회에서 공론을 하는 이유는 ‘보편성에 즐거이 복종하자’는 취지다.

누구의 의견이 옳은 지를 보편성에 입각해 토론하면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 의회공론의 본질이다.

따라서 표대결은 칼 슈미트에 의하면 ‘민주주의 실패’를 뜻한다.

그렇기에 다수결이 아닌 합의공론에 따라 무제한의 토론도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필리버스터의 합법적 취지다.

필리버스터의 기원은 로마 공의회에서 케이토 장군이 케사르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일몰이 되면 의회가 끝나는 점을 이용해 일몰 때까지 연설을 하곤 하는 데서 비롯됐다.

그런 점을 로마 공의회가 나름 수용했던 것도 ‘단결된 로마’를 위해서였다.

이러한 ‘선의의 제도’를 악용한다는 의미가 ‘해적질’이라는 뜻의 ‘필리버스터’다. 필리버스터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보편성에 입각해 상대를 설득하고자 진정성을 가진 연설끝에 그 시간이 10시간이든 24시간이든 흐르는 것이야 할 수 없지만, 일부러 결정을 방해하기 위해 개소리나 늘어놓는 고의적 필리버스터는 반의회주의적이며 반 민주적이다.

의회공론은 합의를 통한 만장일치의 미덕을 얻기 위함이지, 결정을 반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런 것은 민주주의의 실패다.” – 한정석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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