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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왜 믿어야 하는가?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430년만에 엑소더스 광야에서 40년간 단련받고 가나안 정복, 다윗왕조를 세웠지만 정신문화 정복은 실패 우상숭배문화에 동화 악을 행하다 430여년만에 다시 바벨론제국에 의해 패망 포로로 끌려갔다.”   -강영훈님 –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급에서 부터 광야생활, 가나안 입성, 다윗의 통일 시대를 거쳐서 결국은 바벨론의 노예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반복해서 변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변천은 마치 신앙인의 탄생에서 부터 유아 시절에서 청장중노년을 거치면서 흥망성쇄를 거듭하는 인생 모습의 발전 시퀀스를 보여 주는 것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편으로는 구약이 끝나는 말라기에 이르도록 결국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백성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이스라엘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해 보면서,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인으로 살아 가는 필자의 가련한 모습으로 오버랩이 되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심히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신앙인의 인생살이도 예외 없이, 망해야 하는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가는 그 길을 따라서 걷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조바심이 나는 것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신약의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은혜에 대한 감사함과 누림 대신에 여전히 죄의식에 잠겨서 구약의 율법대로 판단하려하고 따르려하는 못난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족하며 머물고자하는 어둠의 자식의 특성을 즐기는 듯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인간 스스로는 결코 구약의 구습을 벗어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재확인 할 수 있고, 하나님의 결단이 없이는 도무지 이스라엘 백성의 무지함에서도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알수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약의 특징은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를 구원하실 구세주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 외에는 우리를 죄의 관습에서 벗어 나게할 어떤 도리도 찾을 수 없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를 유일무이의 구원자로 믿는다라고 함은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아멘으로 순종한다는 의미이고, 그 약속의 의미에서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미리 우리를  선택하시고, 계획하신대로 행하시는 것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외에도 죄인인 우리의 죄를 보시지 않으시고, 의롭다고 칭의하신 그분의 사랑의 선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에게 구속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나아갈 길을 주저함 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의 푯대를 향해서 쉬임 없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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