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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과 일본과의 인연!

라면에 얽힌 이야기지만 어찌 라면에만 국한 되겠는가마는 이거야말로 한일 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자료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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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절대로 홀로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다. 서로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계획된 존재들인 것이다. 서로 미워하면 지옥이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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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도 러시아도 우리의 가까운 이웃으로 함께 살도록 계획하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러운 관계로 나아갈 것이고, 통일된 대한반도가 동북아 시대를 새로이 선도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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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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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라면이 만들어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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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라면은 1963년

삼양식품의 삼양라면이 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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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아 한국 사람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 날,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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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장은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을 들여오기로 합니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라면을 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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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 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 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 였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전 사장은 당시 중앙 정보부장이던 김종필(JP) 씨를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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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라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집니다. 신용장을 열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냉담했답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 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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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 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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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 정상화도 안 됐지만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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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 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 시설을 두 라인에 2만 5,000 달러로 즉석에서 발주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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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과 수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습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 제작의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 주지 않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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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장이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줍니다.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이 적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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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 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가격이 10원,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 저렴한 가격이었음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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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라면 수출액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연속 증가했는데, 1월부터 7월까지 집계된 라면 수출액이 5억 2천202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7.7% 증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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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난해 연간 수출액은 7억 6천543만 달러로 역대 최대였는데, 이 속도라면 올해 10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런 애국자들의 덕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진입하고 배고픔을 벗어났습니다” -박미숙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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