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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하나님을 알자!

“인간은 이성, 즉 로고스를 따르는 존재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왜 모르는가?

인간이 만약 이성을 따르지 않게 되면 인간이란 종은 멸종된 것이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이 말은 인간의 길을 아무도 걷지 않게 되면,

인간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짐승 중의 상위 짐승일 뿐 인간이라는 특별한 존재,

즉 양심을 선택해서 옳은 것을 추구하고 악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는 이 우주에서 사라진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우주에 인간이라는 종 種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우리 각자가 양심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 윤홍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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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인간은 생각하는 이성, 즉 선악과를 먹은 최악의 동물 군입니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만약 우리가 여기에서 이성과 양심을 주장하는

한,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 즉 하나님 같이 되려는 자신의 의로 해서 지옥의

유황불을 피할 수가 없지요.

이 원리를 깨닫고 회개하면, 즉 피조물의 무력한 입장을 전적으로 고백하고,

창조주에게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지할 때에

비로소 진리에 속하게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양심과 이성은 전적으로 자기 의에 의지하는, 자아의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로 인간을 선악과를 범한 원초적인 죄인의 상황으로 떨어지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육으로 보지 말고, 영으로 봐야 진리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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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양심=이성 은 표현방식을 달리했을 뿐 성령하나님이시죠.

무위자연의 성령 하나님.

빌립보서 1 장 6 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착한일=양심의 마음은 성령하나님을

뜻합니다. 단어 적 표현이 달리했을 뿐, 엄마를 어무이 ,어머니, 마덜, 맘

이렇게 달리해서 부르듯이.

사람들의 행동과 말씨를 보면 자기의 의인지 하나님의 양심의 마음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표정과 함께 보면 보여 집니다. 교회 속에서도 사람들 보면 자기의

의로움을 과시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려지기도 하고.

자신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자의적 스스로 난 의로움 너머에 바람처럼

물처럼 임한 하나님의 성령이라면. – 허정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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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양심은 어쩌면 사회의 문화와 윤리와 도덕과 법에 의해서 좌지우지가

될 수도 있지요. 이를 잘 지키고, 잘 따르면, 우리는 착하다, 좋다, 깨끗한

사람이라고들 하지요. 자비롭다고도 하겠지요. 그러나 성경에서 이런 분들은

영혼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선악과로 인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하나님과 같이 애써 거룩하게

되려고 하는, 근본 죄인의 인간성을 잘 나타내는 사람들, 즉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는 대표적인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라 해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예수께서 부르신 자들이랍니다.

‘착한 사람= 양심과 이성이 바른 사람# 선한 사람(선한 사마리안)

= 그리스도 예수= 성령님’ 의 공식을 보시면 됩니다.

결국, ‘양심=착한 사람#성령님’의 공식이 성립됩니다.

성경에서도 “세상에 선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지요.

인간은 공수래공수거가 아니라, 불교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는 업을 업고

태어난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거지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거지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인간은 아무도 없기에, 인간은 결코 선한 행위로

좋은 양심 있는 자가 될 수가 없는 비참한 처지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진리를 깨달은 자라고 하며, 순전히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는 겁니다. 이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을 용서 받은 자, 즉 영혼 구원

받은 자라고 하며, 진리와 벗한 자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행위(이성과 양심)적으로 보면 모두가 오십보백보로 죄성에서 차별이

없지만, 다만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강함을 믿고 순종하여 따르는

사람을 의로운 의복을 입힌 사람들이라고 하며 하늘의 자녀라고 불리는 구별되는

사람,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요.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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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진정으로 착한 일을 할 수가 있을까?

과연 착한 일을 했다면 그것을 한 것에 대한 대가를 다시 되돌려 받으려고

하지 않을까? 빌립보서 1 장 6 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성령하나님은 착한 일을 하도록 인간의 마음속에 씨앗을 심어놓고 그 착한일이

말과 행동으로 열매되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서 1장 11절> – 허정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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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요.

착한 일이란 깨달음 뒤에 나오는 전적으로 성령의 은혜로 열리는 성령의 열매이지요.

나의 열매라 하지 않고 성령의 열매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우리 성도들이 깨달아야

하는 바른 해답을 여는 열쇠입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 우리가 공짜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힘의 원리, 즉 양심과 이성의 이름으로 교만한

자아의 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적으로는 무기력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의의 옷으로 덧입음을 받은 긍휼의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먼저, 하나님을 애써 알자!”라고 가르치고 있지요.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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