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 담론에 대한 담론!
“회화에서는 원근법이, 소설에서는 3인칭 서술이 리얼리즘을 완성한다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1인칭 서술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적어도 인간 이해에 있어서 감옥은 대학이었습니다. 20년 세월은 사회학 교실, 역사학 교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학’의 교실이었습니다. 신영복, <담론>
이 시대의 대표적 지성인인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74)가 명저 <강의> 이후 10년 만에 신간 <담론>(돌베개)을 출간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20년20일 동안 복역한 신 교수는 출소 이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스테디 셀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기 성찰, 역사와 사회 현실, 세계 인식에 관한 깊은 사유로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전했다. 경향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나왔습니다. 신영복 샘의 20년 20일 그 세월로 우리가 갇혀 있는 감옥을 똑바로 응시하게 됩니다.“
사회와 역사와 인간이라?
자아 성취와 완성을 위한 갈등과 몸부림, 정도로 보고 싶네요.
아무리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서 혁명을 향한 역사적 의미와 사회 참여를 간절히 원한다고 하지만, 역시 세상은 모순 속에서 또 다른 모순으로 발전하는 작은 모순의 존재에 불과 한 거지요.
결국 오늘의 주장이 내일의 고집이나 터무니없는 오해로 귀결되곤 합니다. 그러니 모순 속에서 어떠한 사상이나 주장도 결국은 쓸모없는 쓰레기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서양의 존재론이나 동양의 관계론을 대표로 해서 인간 세상의 가치를 논하고자 하고, 삼인칭의 리얼리즘과 일인칭의 리얼리티의 의미를 구별하여 더 성숙한 가치로 이끌어 가고자 하지만, 결국은 다양성을 통한 자기 성숙과 통찰을 실현하는 인간들의 작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거지요.
그렇다고 극히 한 부부에 지나지 않는 그야말로 담론에 그칠 수밖에 없는 사고와 행위에 대한 적절한 표현을 ‘작은 몸부림’이라는 제목으로 서술하는 것이 더 아름답게 여겨질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어느 분의 이야기처럼, 작은 물고기가 세상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상을 예로 들면서, 이것이야 말로 열정의 표현이라고 했고, 이 열정의 표현이야말로 인간이 살아 존재하는 유일한 가치요 이유라고 했지만, 어쩌면 이것도 터무니없는 예화가 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성과 우리라고 하는 관계성이야 말로 오랜 역사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면서 인간의 혁신적인 지식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 발생적인 변화로 인류가 진화되었다는 사실에 더 많은 의문적 관점을 가져야 될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어 봅니다.
리얼리즘과 리얼리티의 극대화를 통한 인간의 자기성찰과 사회변혁을 꾀하기 전에 먼저 근본 우주 흐름의 이치에 연관 시켜서 존재와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발굴하는 규모의 시도가 선행되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느낌을 가져 봅니다.
@ 안응 곽계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