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이체를 만난다!
좋은 글 아래에 공유해 봅니다.
아래;
“삶에 회의감이 느껴질 때 또 다른 삶을 꿈꿀 수는
있겠지만 그 삶 또한 대동소이 할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세상의 반복되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초월적 세계가 아닌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실존적 삶에 가치를 두면서 그 갈등과 고통마저 수용하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디오니소스식 긍정이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인데 로마 신화의 바쿠스(Bacchus)에 해당되며 대지의 풍요를 주재하는 술의 신이다. 마음 속 내면으로 들어가 그 저변을 뚫고 파헤쳐 찾아 낸 본질을 디오니소스라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세상 속에서 신이 던지는 주사위처럼 우연한 존재로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그 안에서 생의 필연성을 창조해 내는 것이 지금 이 순간 삶에 충실한 위버멘쉬(Übermensch)적 존재로서의 자각이다.
아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로마 신화의 아폴로에 해당한다. 아폴론은 권력의지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면서 도덕적 가치는 권력의지가 만든 관습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니체는 권력의지의 거대한 아폴론 집단으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니체가 탐구했던 인간의 두 마음이다.
생명, 본능, 사랑, 양심으로 표현될 수 있는 에너지를 니체는 디오니소스라 했으며 디오니소스와 가장 가까운 예술로는 음악을 꼽았다. 니체에게 디오니소스는 창세기의 생명나무와 생명열매에 비견되며 지식의 체계나 영적지식도 아폴론적이며 이는 권력의지로 나타나는 선악과다.
디오니소스, 빛, 생명, 로고스, 진리는 느껴지고 보이며 만져지고 나타나는 것이지 지적 체계가 될 수는 없다. 영원회귀로 마무리 되는 니체의 사상은 아폴론에서 디오니소스로 가야하는 자연(우주)이 인간에게 주는 기회다.”
<정신건강증진 전문가 임주완 철학박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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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디오니소스와 불교 대승기신론)
장주가 <장자>에서 언급한 곤(鯤)과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는 니체가 언급하는 디오니소스와 동일한 개념이다. <장자>의 소요유편에 나오는 곤이라는 물고기와 붕(鵬)이라는 새를 니체는 디오니소스(Dionysos)로 연결시켰다. 곤은 수컷 물고기의 정자 혹은 알인데 구체적으로는 생명체의 핵을 의미한다. 곤이라는 물고기는 바다를 생명의 근원지로 삼아 성장하면서 하늘을 나는 거대한 대붕으로 변신하는데, 곤으로 표현된 핵이 무한으로 확장되면 대붕이 되고 나아가 우주도 된다. 우리 인간 또한 곤에 비유될 수 있으며 이는 참 나를 결정하는 자신만의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어느 인간의 삶이 바다에서만 머물다 끝나는 물고기 곤이라고 한다면 그 인생은 진정한 자아를 모르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광활한 창공으로 떠오른 무한자유의 대붕은 한 마리 물고기라도 더 차지하려고 다투는 갈매기가 아닌 높은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조나단(Jonatharn)인 것이다. 알에서 물고기를 거쳐 새(鳥)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알로서 자신의 디오니소스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남을 따라 하거나 모방하는 자아를 버릴 수 있다. 곤이 환골탈태하여 대붕이 되는 것은 장주가 바라는 것이며 니체의 생각이기도 하다. 우주가 무한하게 처음으로 동일하게 돌아가는 니체의 영원회귀는 불교에서의 윤회와는 차이가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의 중심사상을 영원회귀로 볼 수 있는데 그는 인간의 삶은 과거에 무한히 반복되었던 삶 중의 하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새로운 생명체나 비슷한 생명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생명체로 영원히 돌아온다는 개념이다. 이것은 어쩌면 허무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한 마리 독수리가 뱀을 물고 하늘을 돌면서 회상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삶에 회의감이 느껴질 때 또 다른 삶을 꿈꿀 수는 있겠지만 그 삶 또한 대동소이 할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세상의 반복되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초월적 세계가 아닌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실존적 삶에 가치를 두면서 그 갈등과 고통마저 수용하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디오니소스식 긍정이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인데 로마 신화의 바쿠스(Bacchus)에 해당되며 대지의 풍요를 주재하는 술의 신이다.
마음 속 내면으로 들어가 그 저변을 뚫고 파헤쳐 찾아 낸 본질을 디오니소스라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세상 속에서 신이 던지는 주사위처럼 우연한 존재로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그 안에서 생의 필연성을 창조해 내는 것이 지금 이 순간 삶에 충실한 위버멘쉬(Übermensch)적 존재로서의 자각이다. 위버멘쉬는 니체 철학의 근본 개념으로 기독교적 선악 기준의 도덕관념을 초월하고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자기가 새로이 창조한 가치에 그 가능성의 극한까지 실현하고자하는 사람이다. 위버멘쉬를 초인(超人)으로 번역하면 슈퍼맨 같은 초능력자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극복인(克服人) 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 같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에 반하는 것을 아폴론(Apollon)으로 보았다. 아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로마 신화의 아폴로에 해당한다. 아폴론은 권력의지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면서 도덕적 가치는 권력의지가 만든 관습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니체는 권력의지의 거대한 아폴론 집단으로 여기는 기독교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디오니소스에서 찾았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니체가 탐구했던 인간의 두 마음이다. 생명, 본능, 사랑, 양심으로 표현될 수 있는 에너지를 니체는 디오니소스라 했으며 디오니소스와 가장 가까운 예술로는 음악을 꼽았다.
니체에게 디오니소스는 창세기의 생명나무와 생명열매에 비견되며, 불교경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심진여문(心眞如門)이며 심생멸문(心生滅門)인 것이다. 일심이문(一心二門)에서 생멸이 반복되기에 심생멸문이라 부르며,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은 계속 생멸이 반복되어 이어짐을 의미한다. 진여심은 오로지 공(空)만을 향해 있기에 움직이지 않는 부동심이다. 또한 제법실상(諸法實相)인 공을 향해 있는 마음이기에 이는 곧 지혜 그 자체다. 마음은 크게 두 종류로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진여심과, 움직이며 생멸을 반복하는 생멸심이지만, 심진여문과 심생멸문 이 두 문이 서로 여의지 않기에 따로 분리된 게 아닌 하나의 마음일 뿐이다.
지식의 체계나 영적지식도 아폴론적이며 권력의지로 나타나는 선악과이며 심생멸문이다. 디오니소스, 빛, 생명, 로고스, 진리는 느껴지고 보이며 만져지고 나타나는 것이지 지적 체계가 될 수는 없다. 영원회귀로 마무리 되는 니체의 사상은 아폴론에서 디오니소스로 가야하는 자연(우주)이 인간에게 주는 기회다.”
<정신건강증진 전문가 임주완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