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인생의 미래와 삶의 의미?

[인터뷰] “달려오는 미래,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김대식의 빅퀘스천’의 저자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과 김대식 교수/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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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미래의 트랜드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한 때는 미래학자(未來學子)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특히 뇌 과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뇌란 것은 두개골 안에 위치하는 작은 생체의 일부를 넘어서 우주의식(宇宙意識) 까지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엄청난 미스터리가 아닌가? 인간만이 뇌로부터 정신이라는 특별한 사고를 하게 해서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위대한 호칭을 스스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을 중심으로 한 모든 휴머니즘의 실체가 과연 그럴까? 하는 것이 ‘빅 퀘스천(Big Question)’ 이라는 책에 다루어진 주 내용이 되었다 하겠다.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지동설(地動說)이 천동설(天動說)로 깨어진 이래로 이제 남은 인간계몽(人間啓蒙)의 화두는 과연 인간이 우주의 중심인가? 하는 질문에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될 것 아니겠는가? 여기에는 지구상에 공존하는 모든 생물과의 대 타협의 전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구 외계에 존재하는 외계인들의 존재와 그들의 우수한 창의적인 지적 능력에 대한 인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앞으로 창출할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사회가 도래되었을 때에, 과연 인간의 지적 능력이 얼마만큼,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가치가 퇴색 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과 대비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학습능력을 갖춘 강한 로봇은 인간과 같이 스스로 학습능력(學習能力)을 배양할 수 있고, 종국에는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슈퍼맨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인간을 동물시장으로 내 보낼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 아닌가하는 미래 로봇세계를 점치고 있다.

또한, 삶이 의미를 가져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책은 읽어 보지 못 했지만, 기자가 잘 요약하고 있는 것은 우주를 의식하고 있는 인간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정도인 것 같다. 사실, 인간이 삶의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했을 때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경우의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이와 유사한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면서 스스로 자문자답을 마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인간이 과도하게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을 상쇄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불행은 많은 경우, 삶에 너무나 많은 의미를 부과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터무니 없는 방향으로 왜곡되고 결국은 인간 사회가 걷잡을 수 없는 혼돈(混沌)의 악순환(惡循環)이 반복되어 확대 재생산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사회 도처에 이로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원래, 태초의 인생은 그렇게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점차로 삶의 형태가 복잡해지면서, 물질문명 속에서 경쟁으로 인한 생존가치가 인위적인 인간 문화의 잣대로 저울질 되면서, 소위 선악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자행되는 상대적인 비교가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삶의 의미의 필요성이 우리 안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찰나(刹那)의 순간을 지나다 갈 피조물 입장을 벗어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의미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 이 말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허무한 인생 삶에 어떠한 가치의 의미를 부과 하든지 간에 그것은 허황된 삶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오죽했으면, 인간의 주인은 시간(時間)이라고 했을까? 따져보면, 영원에 다다를 수 없는 허무한 인생들의 욕망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려는 동기가 된 것은 아닐까? 작금에 필자는 오히려 삶의 의미를 상쇄(相殺)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의미를 부과하기에는 필자에게 부과된 무거운 삶의 짐을 도저히 감당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생에 짓누르는 삶이 주는 의미의 무게를 감당 못할 때마다, “인생은 어차피 주어진 세상의 작은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가?”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스스로하고 있다. 결국, ‘나의 삶’이라는 단어 자체도 무의미하게 다가오지 않겠는가? 세상을 잠시 머물다 갈, 어느 인생이 ‘나의 삶’이라고 감히 주장하기나 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단지, 교만(驕慢)에서 나오는 속임수일 따름이다.

우리는 잠시, 삶을 차용(借用)해서 지구에 머물다 떠나야 가야할 영원한 미완성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야 할지도 알 수 없는 미약한 존재가 아닌가? 세상만사에 내 꺼, 네 것, 내 새끼, 네 새끼를 따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무의미한 인생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할 것으로, 이 조그마한 지구에 보내진 무의미의 사명을 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우리 인생 삶에 의미는 없다”는 진실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가 부여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의미의 가치 평가조차도 피조물인 우리 몫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닐까?

우리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그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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