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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한 사람만!

어제는 주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아침에는 이태원에 있는 외국인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보고, 이 후에는 회기동에 있는 서울 삼육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내일 아침이 손기태 목사님 발인이 되어서, 교회 끝나고 낮 시간을 이용해서 다녀 오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아련한 옛 추억이 되었지만, 수 년 전에 경기도 금산 쪽에 있는 손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를 2년 동안, 열심히 수요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손목사님은 교계에서 보수성이 강하신 목사 그룹에 드신 분이셨다. 

그래서 여자들의 목사 안수 받는 것에 대해서도 개탄을 하셨고, 그 외에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도 이단들의 행위라고 극렬히 반대하셨다. 더불어 성경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개시키면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셨고, 특히 요한 계시록에 대해서는 한국 교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문헌을 연구하고 관련 도서를 출판 하셨다.

여든이 되실 때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열정적으로 여러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복음의 진수를 전하시기에 한 번도 게을리 하시지 않으셨다. 필자도 당시에 영성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고, 정통 교단들에 대한 폐해를 통감하고 있었기에, 독립 교단에 뜻을 두신 손목사님의 가르침에 공감하는 면이 있고, 또한 소박한 제자들과의 만남이 늘 새로워서, 2 년을 하루 같이 후딱 보내게 된 것이었다.

손목사님의 영정을 대하면서, 고집스럽게 신앙의 본질을 지키시겠다고 노력하신 그분의 노고에 새삼스레 마음이 숙연해지고, 고개가 숙여졌다. 

과연 신앙이 무엇인가? 

신앙은 영구 불변한 것인가? 

100 세를 사신다고 장담하시면서, 젊은 사람들의 열정이 감히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설파를 하시던 손목사님이 이제 갓 여든을 지난 시기에 갑자기 타계 하신 것이다. 

비록 몸은 갔지만, 그 분의 신앙에 대한 주관은 영원히 남아서 하늘의 생명록에 기록 되었을 것이리라. 장례 식장에서 만난 가까웠던 수제자 한 분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일초 일분을 아끼면서 바삐 다니면서 배우고자 했던 모든 이론들이, 이제는 하얀 백지 같이 모두 다 깨끗이 잊어 버리게 되었고, 어떤 이론도 새롭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는 심정을 고백해 보았다. 

“신앙이란 열심히 하여 하나 하나 성을 쌓듯 이루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든다. 신앙이란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숨 쉬고 대화하며 동행하는 것이다. 신학 대학 졸업하고, 스팩 쌓고, 이것 저것 바쁘게 유식하게 되는 것 하고는 일절 상관이 없는게 신앙이 아닐까? 

우리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동행하며 나눈 대화와 생활 자체가 바로 복음의 진수가 된 것 같이, 이제 사는 동안, 성령님과 동행하며, 인도를 받는대로 믿음으로 아멘하며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 바로 참 신앙이 아니겠는가?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전도서의 고백이, 세상 사느라 바쁘게 돌아가는 모든 중생들에게 해당되는 진정한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세상의 살아 가는 법칙처럼 단순한 것이 없지 않은가?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먹여 주고 입혀 주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아무리 잘 난 사람, 못 난 사람의 빈부차이가 많다고 떠들어 대도, 나름대로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하루를 살아 가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문명의 이기인 전기와 돈이 없어진다고 절대로 인류가 멸망하지 않을 것 아닌가? 오히려 마차 타고 서로 가진 것들을 나누는 물물 교환하면서 인류 본질의 장인 창조 질서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되찾을 것이고, 이웃과 함께 하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제 인류의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들을 너무 먼 곳에서 구하지 말자. 

오늘 이 순간에, 이 곳에 충실하면서 살아 가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비극은 너무 먼 곳을 바라보고, 아득한 미래를 추구하면서, 허황되게 우리의 수준을 너무 확대 해석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번에 한 사람만 안아 주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고백한 인도의 성녀의 간절한 기도처럼, 작게 살고, 스로우 하게 움직이는 인류 사회가 되도록 우리도 기도해야 하리라. 

우리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너무 과장되어 풍선처럼 부풀려져 살고 있다. 

언젠가는 한 번, ‘꽝’하고 풍선이 터지듯 부풀어진 만큼 쪼그라들어 초라하게 돌아 갈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종말이 되었든, 말세가 되었든지 간에, 이후에는 하나님 심판대에 필히 서게 되어 있다.

자연에 날아 다니는 새들과 들풀처럼, 수고하지 않고, 거품 없이 산 사람들은 세상에서 누린 것처럼 하늘에서도 자연과 함께 하늘의 영광을 누리리라.

“한 번에 한 사람만이라도 껴 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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