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자유와 사랑의 존재감!
에리히 프롬의 저서들은 현대 철학 가운데서도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한다. 자기 철학의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쉬운 언어와 비유를 통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S.프로이트와 K.마르크스의 영향하에서 출발한 프롬은, 파시즘의 선풍에 대중이 말려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체험을 통해 ‘근대인에게서의 자유의 의미’를 추구하는 데에 그의 사색활동의 전부를 바쳤다. 현대에 와서 일반화되어 가는 신경증상이나 정신적 불안은 개인적인 정신분석 요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프랑크푸르트학파에 프로이트 이론을 도입하여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그 나름의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였다. 이 3자의 역학에 의해 사회나 문화의 변동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기하였는데, 그것이 즉 ‘인간주의적 정신분석’이다. 저서에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인간의 자유》(1947) 《건전한 사회》(1955) 《선(禪)과 정신분석》(1960) 《인간의 승리를 찾아서》(1961) 《의혹과 행동》(1962) 《혁명적 인간》(1963) 등이 있다.
1.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
그들은 왜 자유를 반납하게 되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유는 ‘자본’이 있어야 자유롭다. 즉 내가 살아가는 것은 나의 자유이지만, 동시에 내가 살아남는 것도 나의 책임이 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란, ‘경쟁에서 살아 남는 자유’인 것이다. 누가 자신의 생계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고 그럼에도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사람들은 치열하게 경쟁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경쟁은 끊임없는 불안과 고독감을 야기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불안과 고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권위에 자유를 반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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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우리는 왜 사랑을 하려고 하는가?
근대 이후로 인간은 자유로워졌지만, ‘개인의 선택이 개인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이런 자유는 인간을 불확실한 상황으로 내몰았다.
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개인은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고독감을 느끼게 되었고, 고독감은 개인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방법을 찾게 된다. 술이나 마약을 통해 잊어보려고 하고, 때론 성적인 욕구에 매달림으로써 불안을 잊어보려고 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함으로써 불안을 떨쳐내려고 하기도 하고, 창조적 작업과 노동에 매달림으로써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결국 ‘인간이 혼자’라는 감정을 바꾸진 못한다. 사실 고독감의 불안을 극복하는 진정한 방법은 “인간과의 융합, 즉 사랑” 밖에 없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사랑의 기술에 숙달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어떤 실용적인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는 달리 전 생애를 통한 훈련이다. “이 훈련은 외부로부터 부여된 규칙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 표현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즐거운 과정이다.”
또한 ‘집중’이 필요하다.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은 (1)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자립할 수 없어서 상대에게 집착한다면, 상대는 나를 구해줄 수 있겠지만 그 관계는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홀로 있을 줄 알아야 사랑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선 ‘끈기’가 필요하다. (2) 사랑은 한번의 완성이 아닌 반복된 실패를 통해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관심’이 있다. 우리는 (3) 자기 자신에 민감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민감하게 귀기울여야 하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프롬은 마지막으로 두 가지 조언을 건넨다. 결국 사랑의 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4) 자아도취를 극복하는 것일테다. 자아도취의 반대는 ‘객관성’이다.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 자아도취에 빠지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의 결점을 직시하고 이성을 통해 겸손을 취하며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사랑한다는 것은 (5) 아무런 보증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상대도 나를 사랑해 주리라는 희망을 거는 것이다. 내가 바뀌었으니 너도 바뀌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 속에서 상대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3.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
《소유냐 존재냐》는 제목 그대로 소유의 삶을 추구하는게 좋은지, 존재의 삶을 추구하는 게 좋은지 논하고 있으며, 에리히 프롬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