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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廣野)는 필요에 집중하게 만드는 곳!(268)

(“연단을 위한 광야”

요셉, 다니엘, 여호수아 등은 눈에 띄는 허물을 발견할 수 없다.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 광야의 연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요셉은 노예와 감옥이라는 광야를 통과했다.

다니엘은 풀무불과 사자 굴의 위협을 통과했다.

여호수아는 오랜 기다림의 광야를 통과했다.

광야는 지나기에는 힘든 곳이지만,

인생의 유혹과 시험에 대한 백신 역할을 감당한다.

다윗에게는 광야가 있었고, 사울에게는 광야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야의 연단이 없는 인생은 약하다. 광야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힘이 없다. 광야가 없으면, 광야의

시간 이상으로 그의 삶에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왜 광야의 사람이 강한가?

광야는 우리에게 우리의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을 절제하게

하고, 필요에 의해 사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필요로 살면, 많은 것이 없어도 된다. 진짜 중요한 일에

집중해서 살 수 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영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룬 왕이 엘리자베스 1세이다.

1644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력화시키기고 대서양 제해권을

장악한다. 엘리자베스의 강점은 그의 광야에서 찾을 수 있다.

생후 3달 만에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3살 때 아버지

헨리 8세가 어머니 앤볼린을 참수시킨다.

그러고 어머니의 시녀인 제인 시무어와 결혼한다.

얼마나 한이 맺힌 인생이었겠는가. 이후 피의 메리라 불린

언니 메리가 왕위에 올랐다. 메리는 엘레자베스 1세를

런던탑에 가두었다. 자신도 어머니처럼 언제 참수형을 당할

지 알 수 없는 위기의 순간들이었다.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영국의

왕이 되었다고 통보받는다.

엘리자베스 1세는 감옥에서 왕좌로 옮기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다. 그리고 그의 평생 그 광야의 연단을 잊지 않는다. 모

든 정책에 있어서 욕망의 결정이 아닌 필요의 결정을 한다.

광야가 영국 최고의 왕을 만든 것이다.

언제나 인물은 광야에서 나온다. 광야는 하나님의 최고의 학교이다.

광야는 욕망을 죽이는 곳이다. 필요에 집중하게 만드는 곳이다.

겉멋을 죽이는 곳이다. 광야의 연단을 기뻐하라.) -윤용완 님-

‘욕망’과 ‘필요’와 ‘광야’와의 삼각 구도가 명확해서 좋았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실에서는 광야에 사는 사람은 늘 광야에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또 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하지만은

않다는 교훈입니다.

결국 모든 책임과 피해는 또 필요에 사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간다는 것이지요. 필요에 사는 사람들은 욕망에 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욕망을 채우게 하는 선한 동반자에 지나지 않지요.

육이나, 영이나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이 됩니다.

욕망은 욕망대로 커지고, 광야는 광야대로 더욱 깊어지지요.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1세가 절대절명(絶對絶命)의 감옥에서

참수(斬首)되지 말라는 공식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같은 광야에 있었던 당대의 사람들은

런던탑에서 재기하지 못한 채, 참수를 당했다는 비극적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겁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광야생활과 관계없이 목숨을 구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영국을 세우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또 다른 광야 생활의 대표주자가 있었지요.

광야의 외치는 소리의 장본인이었던,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예비하러 오신 분이었지만, 광야의

고난 생활은 현실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었지요.

오히려 감옥에서 여인들의 농간으로 수치스럽게 참수를 당하였고,

또 쟁반에 목을 담는 비참한 죽임을 당하였지요.

거기에는 여호수아의 용맹도 다윗의 아름다운 왕궁의 로맨스도

없답니다.

이와 같이 같은 광야의 고난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 해석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구약과 신약의 차이만큼이나,

우리의 상식적인 이성으로 상상하고 판단하는 이상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계시와 비밀의 복합적인 교훈이 깔려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시 한 번 주신 광야의 교훈을 되새겨 봅니다.

“광야는 욕망을 죽이는 곳이다.

그리고 필요에 집중하게 만드는 곳이다.

겉멋을 죽이는 곳이다.

광야의 연단을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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