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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知性)’이라는 단어, 그리고 영성(靈性)!(132)

((크리스천의 지성)

지성의 사전적 의미는 “인식과 이해의 능력”이다.

인간은 지성적 기능을 통해 자신의 인품과 인격을 도야해 간다.

특별히 크리스천에게서의 지성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의로움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과 욕구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욱 거룩하고 정결한

지체로서의 온전한 삶을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주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가고자 힘쓰고 애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함”(잠 1:7)이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주신다” (잠 2:6)고 교훈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구하며 바랄 때” (잠 2:1~4),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그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은총으로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더욱 지혜로워질 때 그들의 지성 또한

진리를 향하여 보다 진지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

순수한 지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선한 마음의 동기도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생들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돼야 할 지식과 정보들이 오히려 인생들에게

올가미가 되고 있다.

특별히 크리스천들은 참 지식에 대한 강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물론 특정 상황과 대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판단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습득한

지식의 적용 여부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무익하거나 오히려 악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과 정보를 향한 우리들의 순수 욕구가

아닐까 싶다. 오늘 날 많은 사람이 참으로 악의적인 동기에

의해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여러 해악적인 행위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크리스천들만이라도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참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천기를 속히 분별하여

자신의 생각과 삶의 자세를 즉시 바꿀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의 우둔함으로 인해

고통의 열매를 맛본 후에야 비로소 돌이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여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지혜와 지식과 명철의 풍성함을

온전히 덧입어야 하리라고 본다.) -Daeha Yoon 님-

현상에 대한,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것은

당연히 유추적, 논리적인 이성으로 대하여 분석하고

실험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관념적으로도 접근할 수가

있겠지요.

신학도 학문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이 이성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논리와 분석이 기반으로 하는 것이겠지요.

이는 그야말로 관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주로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아니면, 만남의 깊이에 따라, 느낌의

정도도 틀리고, 실상으로서의 확신도 다르겠지요.

그래서 사모하는 정도에 따라서 보이지 않는 것,

바라는 것에 따른 증거가 될 수도 실상도 되는

것이겠지요.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이야 말로 실제 나타나는

것에 대한 증거요, 실상이라고 했지요.

당신이 세상에 사느냐? 아니면 당신이 하늘에 기준을

두고 사느냐? 하는 것으로 허상과 실상으로 갈라질

뿐입니다. 단언하건데, 하나님의 일만이 실상이고,

실존이고, 존재의 진리입니다. 영원한 대상이

실상이고 실존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매순간 그분과 함께 동행하고 있고, 그것만이 존재의

가치를 창조합니다. 저는 관념적으로도 감각적으로

실존을 느낍니다.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제 경우는 가치관의

흐름이 확신하고 있고 지금 이렇게 헌신하고 있는

겁니다. 실존이 아니라, 개념이나, 관념적으로만,

한다면, 이렇게 모든 것을 올인 할 수도, 할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경외함으로, 위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름 부음 받음이

날로 믿음과 지혜와 명철이 성장해 가는 하나님의

자녀 됨, 일꾼 됨, 지도자 됨의 축복을 충만히 누

리시기를 간절히 권고 드립니다.

사실 ‘지성(知性)’이라는 단어는 자칫, 자기 의를 나타낼

수도 있는 뉘앙스가 풍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져 보았습니다.

지성은 여전히, 나를 철저히 부인하고 십자가에 메달아

죽여야 하는, 나를 죽이지 못하고 미련을 가지게 하는,

그런 옛 나를 대표하는 장식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지성이나 인격이나 예의 도덕 같은 ‘모든 나의 나 되게

하는 옛 것’을 용광로에 집어넣어 하나의 믿음과 순종의

영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취지가 더욱 아름다운

향기를 발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인격이신 하나님도 우리가 승화 된 지성과

도덕과 윤리로 무장하기를 원하시겠지요.

그러나 그것들이 만에 하나, 위에서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함이라는 취지가 약화 되는

경우를 고려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주신 말씀에

포인트를 드려서 드려 보았습니다.

항상 주시는 지성과 영성의 열정과 말씀에

감탄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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