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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참 진리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백 년도 못 채우고 죽는 것을, 비록 백 년을 넘어 산다 해도

늙고 쇠하여 마침내 죽고야 마는 것을. ‘이것은 내 것’ 이라고

집착한 그 물건 때문에 사람들은 괴로움에 슬피 울고 있다.

‘내 것’ 이라고 생각한 것은 영원히 내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 가고 있나니 이를 알고 어서 진리를

탐구하라. – 숫타니파타 -]    -진화스님 인용-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집착(執着)하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라고 해야겠지요. 하물며 “진리를 따르는 탐구(探究)의 집착도 버려라”

하겠지요.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인가?” 라는 의문(疑問)의 마음조차도

집착이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진리는 모든 것을 비운 잔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겠지요.

‘비운 것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나, ‘채워진 것을 모두 비우는 것’이나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만, 시작의 관점은 세상 더러운 내용으로

가득 찬 번뇌(煩惱)를 비우는 것이 먼저이겠지요. 모든 일상 번뇌가

사라지면, 알찬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의 자유로운 감정이

도래되어 알곡으로 온전히 채워지겠지요.

비우고 채우는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집착 없이 수행(修行)하고

획득(獲得)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집착 없는 진리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 수많은 경전(經典)을 소리 내어 읽고, 내용을 묵상하고

깨달음으로 가는 이 모든 일련의 행위가 과연 집착 없이 행해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리에 걸맞은 화두(話頭)를 내어

걸고 오직 몰두하여 정진(精進)하는 것은 어떤가? 이것도 화두에 집착

하는 것은 아닐까? 진리라는 방향설정마저 무시한 진리탐구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까? 무시하는 것도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착 없이 스스로 되어지는 것’이 진리에 도달한 경지가 되는

것이겠지요? 집착 없이 스스로 되어지는 경지를 진리라고 한다면,

자연과 우주만상을 스스로 돌아가게 하는 법칙이 진리가 되겠지요.

우리 인간도 자연의 법칙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존재이기에

진리의 일부분이 된다고 하겠지요. 인간에게도 진리인 자연의

굴레가 씌어져서 생사화복(生死禍福)이 결정 되어지는 것입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고도 하지요.

사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하고, 이 말은 곧

운명(運命)이라고 하고 또 진리의 일부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가

있지요. 그러나 삶의 환경이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는 요즘은 우리들의 운명도 재천이 아니라, 의술(醫術)에

맡겨야 하는 좋은 시절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새로이 운명을 다스리게 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은 ‘생각’과 ‘감정’과 ‘자유의지’로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고 다스리는 주인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요.

그래서 신이 내려준 운명을 거슬러서 인간 바벨탑을 높이 세우고,

신의 자리까지 엿보고 있는 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진리의 일부로서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진리와 운명에 반(反)하여 살면서 온갖 지저분한

쓰레기를 자연에 남기면서 기고만장(氣高萬丈)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진리 앞에 서는 것입니다.

진리 앞에 선다는 것은 진리인 자연의 법칙을 이탈(離脫)한 우리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다시 자연의 법칙 안으로 회복(回復)되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참 진리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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