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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怨讐)는 하나님이 책임지시게 하라!

[이 세상에서 품은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고 풀어지지 않으리니

원한을 버릴 때에만 풀리리라. 아,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여!.

대구, (法句經)] -권청하님 인용-

원한(怨恨)을 버린다는 것은 원한을 인위적(人爲的)으로

버리려고 애써 무관심(無關心)한척 하려는 수동적 방어

자세가 아니라, 능동적 공격 자세를 가지는 겁니다.

피해자(被害者)로 서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加害者)의 자리에

설 때만이 비로소 해결됩니다. 가해자라는 의미는 원수를 미워

하는 대신 원수의 영혼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용서하고

품어 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가해하고 공격하는 겁니다.

기독교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기독교는 이렇듯 역설적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오해를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세상의 상식(常識)이나 윤리(倫理)나 도덕(道德), 전통(傳統)과

경험(經驗), 그리고 성현군자(聖賢君子) 정도의 바른 인간적

세상가르침으로 생각하려들면 백에 백 사람이 모두 오해하고

어리둥절 하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인간적인 논리나 이치를 들어서 자기 합리화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이론을 공고히 하게 되는 거지요. 눈에 보이는

것을 들어서 이야기 하는 현실적인 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들어서 설명하는 사람과 서로 진실공방(眞實攻防)을 하게

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승패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기독교를 대표하는 성격을 이야기 할 때, 흔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표방하게 됩니다. 흠 한 점 없는 어린 양, 예수께서

십자가형이라는 죄인 중에 죄인이라는 억울한 판결을 받고서도,

한 미디 변명도 없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분이었다.

기독교는 세상의 법과 이치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지요. 먼저 마음을 열고, “아멘”이라고 입술로 시인해야 믿음이

실체가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 먼저 실체를 요구하는

세상적인 요구나 이치는 하늘나라의 법과 상반되기 때문에 절대로

통하지 않는답니다.

세상과 하늘나라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 못하는 한,

보이지 않는 믿음의 비밀을 상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선인들이 입증하는 것으로

추리해서 인정할 수밖에는 달리 뾰족한 도리가 없지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우리들에 대한

사랑을 먼저 염두에 두고 살펴야 합니다. 우리들은 다만 그분의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순종하고 실천하면 됩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가까운 부모와 가족이나 친구도 해당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원수를 사랑하기를 더욱 기뻐하신다는 사실

입니다.

우리가 원수마저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나의 영혼이 거룩하고 완전해진 것을 확증하고 싶으신

것뿐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란 것을 보고

싶으신 까닭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용서하고 사랑해야할 원수가 누구인지도 구별하지

않으셨다. 누구든지 가리지 말고 무차별 사랑을 원하신 것이고,

그 중에서도 용서 못할 자라면, 더욱 반기시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비록 우리가 원수를 용서한다 할지라도

그 원수가 저지른 것에 대한 죄과는 스스로 심판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잠언 25:21-21>

여기에서 우리에게는 비록 원수일지라도 남을 판단하거나,

심판하거나 미워하지도 말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히는 대신, 하나님께 다

맡기라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지요.

우리 속에 있는 미움과 두려움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한,

어둠의 악한 허상(虛像)을 온전히 처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하는 자의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창출(創出)

하는 주인(主人)이 되게 하여 완전히 문제를 해결하려하시기 때문

이겠지요.주인의 자세를 가지고 미움의 노예에서 벗어날 때,

원수의 속박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통한 주인

되는 지혜를 구하시기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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